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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한 해 끝자락에서 받은 음악 선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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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저에게 누군가 올해 받은 최고의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지체 없이 여러분과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오늘 이 음악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24~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던 ‘리처드 용재 오닐의 선물- 바로크 나이트’ 음악회에서 용재 오닐은 프로그램북 사이에 자신의 편지를 넣어 청중에게 전했다. 연주자의 이런 따뜻한 마음이 함께한 이 음악회는 영하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녹여주었을 뿐 아니라 올 한해 겹겹이 싸였던 코로나19의 피로를 풀면서 새해를 맞을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을 선물해주었다.

용재 오닐은 비올라 연주자이다. 그는 “비올라는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에서 화려하게 부각되기보다는 ‘내면의 소리’를 내는 악기”라면서 “다른 악기를 돋보일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역할을 한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런데도 용재 오닐은 비올라라는 악기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드문 연주자이다. 2021년 클래식 독주 악기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받으면서 용재 오닐은 그간의 수많은 수상과 국제적인 활동으로 이어진 자신의 화려한 경력에 정점을 찍었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모습. [뉴시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모습. [뉴시스]

바로크 음악으로 꾸며진 이번 음악회에서 용재 오닐은 비올라 음색의 매력을 첼로(문태국)와 테너(존 노)의 협업으로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여기에 정한결이 이끈 디토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기량의 완벽한 사운드가 함께 했다.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와 현을 위한 협주곡 사단조’에서는 첼로·쳄발로·비올라 세 악기의 조화를 조용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주었고, 텔레만의 ‘비올라 협주곡 사장조’에서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여유 있게 소화하면서 바로크 현악 사운드의 풍성한 음향을 선보였다.

잘 알려진 코렐리의 ‘라 폴리아’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비올라 선율로 듣는 경험도 색달랐다. 반복되는 베이스 화성을 배경으로 낮은 음역의 비올라가 펼치는 변주되는 선율은 높은 음역의 바이올린이나 화려한 소프라노의 연주에서 볼 수 없는 단아함과 경건함을 차분하게 드러냈다. 특히 ‘아베마리아’는 인간의 심연을 두드리는 단아하고 차분한 비올라 사운드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용재 오닐 음악의 깊이는 그의 진지한 사색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가 쓴 『나와 당신의 베토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는 “음악은 말로 할 수 없는 숭고함과 우리를 이어주는 이름 없는 끈”이라 하면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인간이지만 음악가로서 삶을 통해 영원성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음악가로서의 고민과 통찰이 담겨있는 그의 비올라 선율을 들으며 올 한 해를 차분하게 마무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