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성원의 미래를 묻다

명함 대신 가상세계 캐릭터 교환하는 날 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향후 10년 지배할 2022년의 이머징 이슈는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동아시아의 고전 『장자』(莊子)에 여름 한 철만 사는 매미는 겨울을 모른다는 고사가 나온다. 근시안적 태도의 우매함을 꼬집는 우화인데, 사실 매미는 자신이 경험했던 여름도 모르고 죽는다. 사계절의 변화를 알아야 여름이 상대적으로 어떤 계절이었는지 이해할 테니 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이유는 미래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변화를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미래라는 거울로 현재를 비춰봐야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교통·통신보다 탄소저감 중요해져
기후위기 해결 못하면 에코 파시즘
새로운 약자 등장, 사회 흔들릴 수도
공공성, 합의, 분권화로 위기 대응
현재 변화 이해 위해 이슈 주목해야

미래학에서는 거시적 변화의 흐름을 읽는 단초로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를 연구한다. 이머징 이슈는 미래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이슈다. 표면적 변화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이슈여서 현재에도 그 조짐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명징한 데이터나 상징적 사건이 나타나지 않아 공적인 의제로 논의되지 않는다. 장자의 말처럼 거시적 흐름에서 오늘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이머징 이슈에 주목해야 한다. 향후 10년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이머징 이슈를 통해 2022년 새해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상해보자.

국회미래연구원은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송민 교수 연구팀과 함께 150만 건의 학술문헌을 수집해 컴퓨터 알고리즘과 머신러닝을 적용, 이머징 키워드들을 도출했다. 이머징 키워드는 미래에 더욱 빈번하게 언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키워드다. 이를 100여 명의 전문가에게 제시하고 키워드에 내포된 이머징 이슈를 발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를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진이 36개의 이머징 이슈로 정리하고 42명의 전문가가 일어날 가능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기준으로 평가해보았다. 10점 척도 기준으로 7점 이상의 가능성과 파급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머징 이슈 10개와 가능성이 작아도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머징 이슈 5개를 꼽아보았다.

가상현실과 탄소가 미래변화의 핵심 동인

지난 22일 강원도 강릉시 사천해변 앞바다에서의 일출. 높은 파도와 짙은 구름을 뚫고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강원도 강릉시 사천해변 앞바다에서의 일출. 높은 파도와 짙은 구름을 뚫고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에게 가능성과 사회적 파급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이슈 중에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가상현실과 탄소다. 코로나19 때문에 확산하는 비대면 온라인 생활환경은 단순히 개인 간 비접촉을 넘어 새로운 개인 캐릭터로 나만의 가상세계를 창조해 타인과 연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래에는 자신의 캐릭터 이름과 주로 활동하는 가상세계 주소를 명함 대신 건넬 것이다. 가상현실에서 어떤 그림과 가구를 놓았는지, 어떤 꽃을 키우고 있는지, 어떤 캐릭터들과 함께 일을 하는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현실에서는 8평짜리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시생활에서 교통과 통신 인프라보다 탄소 저감 인프라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소, 비어있는 주차장에 태양광 패널 설치, 연료절약형 패시브 주택, 모든 공산품과 농산품에 탄소배출량 표시, 재택근무의 정착, 개인과 기업별 탄소배출 제한선 도입, 항공기 운행 제한, 세포 농업의 발전과 이를 통한 배양육 소비 증가, 지역별 쓰레기 배출량 제한선 도입 등을 예상해볼 수 있다. 오늘 나의 행동으로 탄소가 얼마나 배출되었는지 계산하는 일은 마치 삼시 세끼를 먹듯 자연스러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로선 미·중 경쟁의 구도 변화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 경제와 국가안보를 결합한 미국의 동맹국이 형성되고 중국과 대립하는 미래가 예상된다. 이미 미국이 경제와 안보를 엮어 반도체·희토류·의약류, 배터리의 생산과 유통에서 동맹국의 연합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배제하는 보호주의의 진영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내년 초, 중국의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는데, 미·중 각축의 새로운 국면을 암시한다. 기업들은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가치사슬 전략을 변경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외교적 문제로 비화하지 않았던 환경 재난이 노동·복지·주거문제와 연결하면서 환경 재난의 책임을 두고 국가간 갈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위기나 미세먼지는 일상에 불안감을 일으키고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각국의 정부는 환경재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외부 요인을 비난할 가능성이 있다.

교통과 물류에서 에너지 전환의 급전개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수소 하이브리드 트램을 출시하겠다고 밝혔고, 유럽은 2040년까지 경유 기차 퇴출을 예고했다. 에너지 전환으로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수소탱크 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증가할 것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로 기존의 자동차 정비사 실직 등 사회경제적 충격도 예상된다. 폭염·폭우·산불 등 재난에 대비하는 새로운 건축물이나 안전가옥이 등장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지하 벙커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든다고 하는데, 다양한 재난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면서 일반인들도 이런 추세에 가담할 것이다.

개인의 탈사회화, 모자이크 가족의 확산

가능성과 파급력이 높은 이슈 10개

가능성과 파급력이 높은 이슈 10개

모든 인간의 활동이 데이터로 축적되고 인공지능은 대규모 데이터 분석으로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줄 것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에 무한 신뢰를 보낼 것이고, 기존 미디어의 공론장 역할은 축소된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 주는 인공지능 탓에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타자 혐오는 증가한다.

1인 가구 증가, 재택과 원격근무 확대에 따라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해소하는 개인의 탈(脫) 사회화가 가속화된다. 비대면 시대에 취약계층은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된다. 혈연 중심의 가족 관계는 약해지고 개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국가와 공공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정년 이후 소득 단절, 청년 노동력 부족이 맞물려 임금체계 대변환이 예고된다. 청년 인구는 2025년부터 2035년까지 가장 가파르게 감소한다. 고령층 1인 가구 증가, 탈북민, 동성가족, 다문화가족, 혼인율과 출산율 급감으로 가족의 개념을 확대하는 사회적 요구가 증대될 것이다. 공교육 및 복지제도가 다양성과 돌봄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혈연과 입양으로 이뤄지지 않은 모자이크 가족은 대세가 될 것이다.

에코 파시즘, 팬터즘 경제, 탈성장론

가능성은 작아도 사회적 파급력이 있기 때문에 주목해야 할 이슈도 살펴보자. 이런 이슈는 예고 없이 사회를 강타해 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예컨대, 코로나19처럼 징후도 없이 들이닥쳐 사회를 대혼란으로 몰고간다. 가능성이 작더라도 공론화시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지, 누가 피해를 입을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이런 이슈 중에 눈에 띄는 것은 2030년까지 기후위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극단적이고 강압적 방식으로 등장할 에코 파시즘이 꼽혔다. 에코 파시즘은 생태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극단주의의 일종으로, 인간 혐오를 부추긴다.  로봇이 사회문제 해결이나 사회적 돌봄에서 주체적 행위자로서 동작할 때, 로봇의 법적·사회적 책임이 논의될 것이란 이머징 이슈도 있다. 로켓 기술의 비약적 발전, 우주 진출의 장애물 감소, 초고속 운송수단 등장으로 인류는 우주를 인류의 생활권으로 재인식한다는 이슈도 기억해보자. 중국은 독자적으로 우주정거장을 구축하고, 미국은 2028년 달에 상주하겠다고 밝히는 등 우주시대는 성큼 다가올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자신의 일상을 환상적으로 치장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자긍심도 높이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팬터즘 경제활동이 증가할 수도 있다.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불안감, 과도한 노동으로 우울감 증가,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팬터즘을 추구하며, 이를 제공하는 콘텐트에 열광할 것이다. 경제적 성장주의에서 벗어난다는 탈(脫) 성장론은 최근 국내외 서적의 증가로 이슈가 되고 있다. 노동-소득-복지 연계의 약화에서 기본소득, 일자리 보장제 등 새로운 요구가 분출하고, 돌봄-의료-교육의 격차 완화 요구가 증대하면서 탈 성장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다.

이런 이머징 이슈들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방향에 대한 징조를 보여준다. 세계 주요국은 환경보호를 위한 기술개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미래의 리더가 되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이 기술이 야기할 새로운 사회적 문제는 전례가 없어 세계적 협력이 추진될 것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고립, 새로운 약자들의 등장과 확산, 전통적 가족관계의 와해로 사회적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공공성, 사회적 합의, 분권화가 부각될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분노하거나 굶주려 쓰러진 약자들을 보고 제국의 멸망을 경고했듯, 이머징 이슈들이 일으키는 변화들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희생을 강요하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멸망은 멸망으로 끝나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한다.

◆박성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기자로 활동했다. 2006년 세계적 미래학자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를 만나 미래학에 눈을 떴고, 그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과학기술과 사회변화를, 2018년부터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중장기 미래와 국민의 선호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2017년 세계미래학연맹이 수여한 탁월한 ‘젊은 미래학자상’을 받았다. 저서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미래공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