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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 도발엔 응징 의지 확실히 보여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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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북한의 오판 막으려면 

최윤희 전 합참의장 예비역 해군 대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 예비역 해군 대장

버르장머리는 버릇의 속된 표현이다. 어린아이의 못된 버르장머리는 평생 그 부모를 힘들게 한다. 국가나 집단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6·25 전쟁 이후 우리는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잘못 가르쳤다. 북한은 그 버르장머리로 수많은 도발을 자행하고 핵을 개발했다. 뒤늦게 북한의 핵 위협을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나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그처럼 못된 버르장머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 과정의 이해를 통해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미 동맹은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룬 주춧돌이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안보를 튼튼히 지켜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2800달러의 세계 10위 경제 대국을 이루었고 세계 8위의 군사 강국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민주화는 물론 문화 강국을 이루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한·미 동맹은 국가의 부(富)를 가져온 자유와 평화의 근간이었다. 후손들에게 절대 그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미온적 대응에 북한은 ‘도발해도 괜찮다’고 오판
한국은 보복 능력 갖췄으나 실행하려는 의지는 부족
핵 도발 대응 의사결정과 작전·훈련 때 한국이 주도하고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한 독자적인 대응 능력 확보해야

독자적인 단호한 대응은 어려워

한반도평화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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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우리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에 따른 한계도 있었다. 두 나라의 국가 이익이 상충할 경우 더욱 그랬다. 미국은 자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국제질서를 관리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에서의 긴장 조성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은 추가적인 긴장을 촉발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졌다. 전·평시 작전통제권이 없었던 우리는 유엔사령부의 작전지침을 따라야 했고 정전 시 교전규칙(ROE)을 적용했다.

이는 유엔헌장 51조의 자위권을 인용한 것으로 도발 시 자위권을 행사하되 필요성(necessity), 비례성(Proportionality), 완화 조치(De-Escalation)를 준수하라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현상 유지 정책으로 우리가 원하는 단호한 조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과도한 대응을 하면 여지없이 정전관리지침 위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1978년 연합사가 창설되었으나 평시 작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유엔군사령관 임무를 겸직하는 연합사령관은 정전 관리 임무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어 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 합참의장에게 이양되고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연합사령관에게 평시 정전 관리를 위한 핵심적인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연합위기관리 절차상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은 국가통수기구(대통령)를 망라한 양국 의사결정 체계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단호한 대응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위권 차원의 초기 대응은 가능하나 그 이상의 보복은 허용되지 않는다.

북한이 NLL 침범해도 대응에 한계

북한은 6·25 전쟁 이후 수많은 도발을 자행했다. 사소한 공작원 침투 외에도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1·21사태, KAL기 폭파 사건, 판문점 도끼 만행, 아웅산 폭탄 테러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대형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주권 국가로서 어떤 형태로든 상응한 조치를 해야 했다. 그러나 수사적인 규탄 성명 이외에 아무런 조치도 못 했다. 북한은 날이 갈수록 도발의 수위를 높여가며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다. 급기야 많은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을 개발했고 우리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의 미온적 대응이 북한으로 하여금 어떤 도발도 가능하다는 오판을 하게 만든 것이다. 북한의 오만방자한 버르장머리가 만들어진 과정이다.

억지력(Deterrence Capability)은 보복 능력과 이를 시행하겠다는 의지로 이루어진다. 세계 1위와 8위의 군사력으로 이루어진 한·미 연합방위 역량은 그야말로 가공할 수준이다. 그러나 이를 활용해 북한의 도발을 막을 의지는 없었다. 필자는 고속정 정장(대위급) 시 연평도 근해에서의 경험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칠흑 같은 밤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10여 척의 북한 경비정에 에워싸여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순간에도 상부의 지침은 공격 행위로 간주할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후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을 겪으며 많은 전우를 잃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어떤 보복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울분을 참지 못한 전우들의 절규가 귓전을 맴돈다.

필자는 합참의장으로 재직 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북한의 잘못된 버르장머리에 최소 열 배 이상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로 인해 당시 연합사령관 커티스 스패캐러티 장군과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한·미 동맹을 깨자는 것이냐며 강력한 항의도 받았다. 필자는 북한을 절대 이성적·합리적 집단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이후 초기 대응부터 상호 정보를 공유하며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 결과 당시 북한은 쉽사리 도발해 오지 못했다.

북핵, 어떻게든 사용 못하게 억제해야

북한의 핵은 이것저것 재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여유롭게 대응할 위협이 아니다. 여차하면 한순간에 나라와 국민을 괴멸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어떻게든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제해야 한다. 도발 시에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사생 결단의 각오로 대응해야 한다. 고도의 전략과 준비가 필요하다. 북한의 핵 위협을 당면한 위협으로 상정해 몇 가지 제언한다.

첫째, 미래 연합방위체계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핵 도발에 대비한 의사결정은 물론 작전, 훈련 계획도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현재의 의사결정 체계로는 적시 대응이 곤란하다. 지난해 7월 미 육군전략연구소(SSI)의 ‘중국의 패권국화를 막기 위한 미 육군 발전 계획’ 보고서는 그 당위성을 입증하고 있다. 보고서는 제2의 한국전쟁에 대비한 동북아 중심의 미 작전 운용을 우려하며 한국이 더 큰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향후 전작권 전환은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한 독자적인 대응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는 핵무장을 포함한다. 자체 핵무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으나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핵 능력을 이용한 대책들(확장억제전략, 전술핵 재배치 등)이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의 패권국화를 견제하나 핵전쟁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원치 않는다. 한반도에서의 핵 사용이 여의치 않다는 말이다. 여기에 미국 본토까지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공격 능력도 심각한 고려 요소다. 지난 10월 미국 다트머스대 제니퍼 린드와 대릴 프레스 부부 교수 등 미국 학계와 싱크탱크 등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핵 능력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대응해야 한다.

북한 도발 계속되는 한 종전선언은 허황

셋째, 일본·호주 등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된 주변 국가들과 다자적 대응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핵 공격을 재래식 무기체계로 억제하고 방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 체계를 구축할 수 있으나 이 역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변 비핵국가들과 북핵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대단히 효율적이다. 이러한 다국적 대응 체계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 활동에도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잘못된 버르장머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독자적인 핵 개발을 포함한 생존 전략으로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이 도발할 시에는 처절하게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필자는 한·미 동맹의 업적과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굳건한 한·미 동맹은 여전히 우리의 튼튼한 울타리다. 더욱 가치 있는 동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의 잘못된 버르장머리가 계속되는 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허황한 말 잔치에 불과하다. 여하한 경우에도 국가 안보의 빗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