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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두식의 이코노믹스

중국 잡으려는 보조금 규제, 한국에 부메랑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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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요동치는 국제 통상질서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국제통상법센터장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국제통상법센터장

정부 보조금이 규제를 받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부터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국내에서 생산한 설탕 수출을 독려하기 위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외국에서 수입하는 설탕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매겼다. 이 때문에 국제 설탕 가격은 폭락했다. 미국은 1890년 통상법을 개정해 외국에서 설탕 수출에 지급하는 보상금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 후 미국 상계관세 대상이 확대됐다. 설탕 외의 다른 상품의 수출이나 제조, 생산에도 보조금이 지급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23개국이 체결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상계관세 규정이 포함되면서 보조금에 대한 다자간 규범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9년 도쿄라운드 보조금협정을 거쳐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협정이 체결되면서 현재의 글로벌 보조금 규범이 완성됐다. WTO 협정은 수출이나 수입대체를 조건으로 하는 보조금은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그 외 보조금은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줄 때만 규제를 받는다. 인프라 건설이나 일반 국민에 대한 지원금처럼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제공되지 않는 지원은 보조금으로 보지 않는다.

중, 10대 전략산업에 보조금 집중
미·EU, 새 상계관세로 중국에 맞불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위험 요소
달라질 환경에 우리 목소리 내야

미·중 패권경쟁의 또 다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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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글로벌 보조금 질서가 변화를 맞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 경제패권을 노리는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정책을 채택하고 10대 전략산업 분야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의 산업보조금을 불공정한 비시장경제(non-market economy) 관행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보조금 경쟁으로 발전하고, 힘 있는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보조금 룰을 무시하고 있는데 WTO 규칙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과 EU는 중국의 보조금을 잡기 위해 상계관세 절차를 공격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1995년부터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동된 344건의 상계관세 조치 중 미국의 상계관세가 173건, EU가 45건으로 전체의 63%를 차지한다. 미국 상계관세 조치의 절반은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다.

미국과 EU는 중국 보조금을 겨냥한 새로운 상계관세 룰도 도입하고 있다. 올해 5월 미 상무부는 논란이 많은 환율보조금 규정을 만들었다.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여 저평가된 환율도 수출기업에 혜택을 주는 보조금으로 보아 상계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EU는 제3국 우회 보조금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따라 이집트 특별경제구역 내에 설립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그 이집트 기업이 EU로 수출한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상계관세만으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막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더욱이 중국에 대한 상계관세 조치는 WTO의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경제 전반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모두 보조금을 주는 ‘공공기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 내 가격은 시장가격이 아니므로 중국 보조금이 주는 혜택을 계산할 때 중국 내 가격이 아니라 제3국 가격과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WTO 상소 기구는 미국의 주장을 배척해 미국에 좌절감을 안겨줬다.

투자제한·자산매각 조치 부과

이에 미국은 보조금 룰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중국의 비시장경제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같은 생각을 가진(like-minded) 국가들이 연대하여 새로운 국제통상 질서를 만들자고 요구하고 있다. 2017년 미국·EU·일본의 통상장관들은 보조금과 기술이전 강요 등 시장 왜곡적인 정부 개입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 협조하기로 했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했고, 2020년에는 이보다 진전된 상세한 보조금 규제 강화방안을 제시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공동선언에서 3국 통상장관들은 상대국에 대한 피해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금지되는 ‘금지보조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한도나 기한의 제한 없는 지급보증, 부실기업 및 설비 과잉 산업에 대한 보조금, 부채탕감 등을 새로운 ‘금지보조금’ 목록에 넣자는 것이다. 이 밖의 보조금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국가가 상대국에 부정적 효과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하고, 중국에 대한 상계관세 조치를 무력화시킨 WTO 상소 기구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 WTO 협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중국의 산업 보조금 추이

중국의 산업 보조금 추이

EU는 이와 같은 보조금 규제 강화방안을 일방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올해 6월 외국 보조금법안을 공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외국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EU 시장을 왜곡하는 경우 보조금을 반환하도록 하거나 투자제한, 자산매각 등의 조치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최근 3년간 일정 금액 이상의 외국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EU 기업의 인수합병을 제한하고 EU 역내 공공조달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보조금의 범위도 크게 확대됐다. 상품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 등 서비스업에 대한 보조금도 규제 대상에 포함되었고, EU 기업에 현실적 피해를 주지 않고 잠재적 영향을 주는 보조금도 제재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이 법이 시행되기 10년 전까지 제공된 외국 보조금도 소급하여 이 법의 적용을 받게 하고 있다.

WTO의 협상기능 작동 못 해

문제는 이 법안이 중국만을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법안은 보조금을 받지 않고는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부실기업에 대해 장기적 생존 가능성과 해당 기업 자체의 자구 노력이 포함된 회생계획이 없이 지급하는 보조금, 혹은 기업 인수합병을 위한 보조금, 유리한 조건으로 입찰해 수주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금 등을 사실상 금지보조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보조금들은 중국뿐 아니라 시장경제 국가에서도 제공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한국도 경제위기 시 부실기업을 지원한 바 있다. 따라서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 기업들에도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글로벌 보조금 룰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중견 경제국인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보조금 규범도 WTO라는 다자간 체제에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사실상 협상 기능을 상실한 WTO에서 미국·EU·일본이 주창하는 보조금협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결국 EU의 외국 보조금법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방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경제적 파워를 가진 주요국들이 국내법으로 새로운 보조금 룰을 도입하거나, 미국이 말하는 ‘생각이 같은’ 국가 간의 지역협정을 통해 강화된 보조금 규범이 도입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이 가입을 신청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그 대신 2022년에 보다 견실한(robust) 인도-태평양지역 경제협력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새로운 경제협력체 구상에 중국을 견제할 강화된 보조금 규칙이 포함될지 주목된다.

한국 기업의 이익, 어떻게 지킬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무엇보다 어떤 형태로든 보조금에 관한 규범 협상이 진행되는 경우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권리와 이익이 부당하게 제한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EU가 공표한 외국 보조금법안과 같은 일방적인 보조금 규제조치는 국제규범을 통해 적절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변화된 글로벌 경제환경에 비추어 2000년 폐지된 허용보조금의 부활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등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제공하는 연구개발 보조금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보조금 등을 허용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그러나 당장 통일적인 국제규범이 마련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 우리 기업들은 미국·EU 등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에서 보조금 관련 규제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미리 위험을 회피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EU의 외국 보조금법안이나 미국의 환율보조금, EU의 제3국 우회 보조금 등은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례로 지난 6월 미국의 베트남산 타이어 상계관세 사건에서 미 상무부는 베트남 정부의 관리환율제도가 보조금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우리 기업이 투자한 베트남 현지법인의 대미 수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보조금을 잡겠다고 만든 환율보조금 규정에 우리 기업이 부메랑을 맞은 사례다. 중국을 때리려다 우리가 피해를 보는 ‘콜래터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무고한 피해)는 없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