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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서 공개되는데 공무비밀누설?" 공수처에 들끓는 檢·법조계

중앙일보

입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수사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공수처가 친여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은 지 6개월 만에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 이 고검장 수사팀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데 대해 검찰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변호사, 교수 등 법조계에서도 범죄 구성요건에 대한 입증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기소 이후 공소장 내용은 사실상 ‘공개돼야 할 정보’로서 이를 비밀로 보는 것부터 무리수라는 의견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렇다. 지난 5월 12일 수원지검 수사팀은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2019년 안양지청에 이규원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검사에 대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혐의 수사를 중단하라고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튿날 언론은 이 고검장의 공소사실 가운데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도 법무부 검찰국장에 전화를 걸어 “이규원 검사는 미국 연수가 예정돼 있으니 출국할 수 있도록 수사를 하지 말아 달라”라고 전했다는 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공수처는 검찰 내 누군가 언론에 공소사실을 전달했다고 보고, 지난달 29일 대검찰청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출된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연합뉴스

이성윤 서울고검장. 연합뉴스

검찰 내부에선 공소장 공개를 공무상 비밀누설이라며 수사에 나선 공수처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성윤 고검장 수사팀에 있다가 본소속으로 복귀한 부산지검 김경목 검사는 지난달 30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공수처 논리라면 기소 이후 공소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 공수처가 언제든 사건 수사팀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썼다. 다른 검사들도 “공소장이 직무상 비밀이라니 무슨 논리냐”는 등 호응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 고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에서 공보를 맡았던 강수산나 부장검사는 "공무상 비밀누설죄 판례는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을 때, 정부나 국민의 이익 달성을 위한 건지'를 판단 근거로 삼는다"며 "객관적 관점에서 공무상 기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공수처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반면 공수처는 “첫 번째 공판에서 공개되기 전까지는 공소장 내용은 공무상 비밀”이라는 입장이다. 형사소송법 47조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 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앞세운다. 해당 조항은 소송에 관한 일반 절차법이지 죄형을 규정한 형법이 아니며 이 고검장처럼 수사착수 시점부터 보도돼 온 고위 공직자 공소장을 두고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한 건 무리수란 지적이 많다.

게다가 시간차만 있을 뿐, 공소장은 사법절차상 반드시 공개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할 비밀이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일반적으로 1차 공판기일에 검사가 공소사실을 낭독하는 절차도 있다. 현직 검찰 간부는 “공소(公訴) 행위 자체가 국가가 공개적으로 소를 제기한다는 뜻”이라며 “그간 정권에 유리한 보도는 문제 삼지 않다가, 불리한 사건에만 유출을 문제 삼는 것은 공수처의 정치 편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비판했다.

교수·변호사도 "이례적 상황… 곧 공개되는데 어떤 비밀성 있나"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소장 내용에 따라 공무상 비밀인지가 달라질 것 같다"고 전제하며 "공소사실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례적이다. 공소장에 적힌 피의자가 고위직 공무원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공소장은 굳이 따지자면 한시적 비밀이다. 외부에 알려졌다고 해서 처벌할 가치가 있는 비밀인지 의문"이라며 “법정만 들어가면 들을 수 있는데, 어떤 비밀성이 있어서 요란한 수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따져볼 수는 있지만, 형사 처벌 시도는 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여연대 출신의 양홍석 변호사는 "2019년부터 형사사건은 공표를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다만 형법상 처벌까지 가는 것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훈령으로 제정해 2019년 12월부터 시행됐다. 지난해 2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지 않아 해당 규정이 피의자 인권 보호가 아니라 정권 보호용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1월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 중앙포토

지난 1월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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