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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500만원 한도에 답례품 제공…지자체 유입액 1조원 추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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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2023년 시행 고향사랑 기부제

지난 6월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이동마을 부두에서 어민들이 앞바다에서 수확한 다시마를 건조시키고 있다. 2023년 고향사랑 기부제가 시행되면 기부자는 기장 다시마와 같은 지역산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받는다. 송봉근 기자

지난 6월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이동마을 부두에서 어민들이 앞바다에서 수확한 다시마를 건조시키고 있다. 2023년 고향사랑 기부제가 시행되면 기부자는 기장 다시마와 같은 지역산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받는다. 송봉근 기자

“고향사랑 기부금제가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 경제에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귀농귀촌 유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출향 인사와의 관계를 다지는 연결고리로 삼겠다.”(오태완 의령군수)

“시행까지 준비를 잘하면 첫해(2023년)에 수십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다각적인 홍보 방안을 마련하겠다.”(김정섭 공주시장)

“김제시 재정 확충과 농특산물 생산 촉진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박두기 김제시 의원)

10만원은 전액, 넘으면 16.5% 공제
기부액 30% 이내 지역특산품 받아
기부 강요할 경우 징역이나 벌금
일본은 작년 3489만건 7조원 실적

누구나 거주지 외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 공제와 더불어 지역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받는 고향사랑 기부금법이 9월 말 성립한 데 대한 지방의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법은 내년의 시행령 제정을 거쳐 2023년부터 시행된다. 2007년 말 고향세 구상이 처음 나온 지 14년 만에 관련 제도가 빛을 본 의미는 적잖다. 일본은 2008년 시작한 고향 납세 제도가 지금 지방 창생(創生) 정책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우리의 새 제도도 한계 상황에 부닥친 농어촌 지자체에 원군이 될 것인가. 고향사랑 기부제를 문답으로 풀어본다.

현재 거주 중인 지자체는 해당 안돼

기부는 기초·광역단체 모두 가능한가.
그렇다. 새 법은 기부 대상을 지자체로 규정해 광역·기초 단체 모두에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부분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출생지(시군구)별 거주 인구 및 비율

출생지(시군구)별 거주 인구 및 비율

기부금의 상한을 비롯한 규제는.
거주지 관할 지자체(기초+광역단체)에는 기부하지 못한다. 예컨대 대구시 동구 주민이면 대구시(광역)와 동구(기초)를 제외한 광역 또는 기초단체에 기부가 가능하다. 제도가 주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업에 대한 기부 강요를 막기 위해 법인은 기부할 수 없도록 했다. 지자체와 업무·고용·계약 등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도 기부가 불가능하다. 개인은 복수의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고, 연간 전체 기부 상한액은 500만원이다.
세액공제 혜택은.
이번 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고,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 설명에 따르면 10만원까지의 기부액은 전액 세액 공제되고, 10만원~500만원은 16.5%의 공제가 적용되는 방향이라고 한다. 일본은 거주지 외 지자체에 기부하면 상한 내에서 2000엔을 뺀 전액을 소득세·주민세에서 공제한다.
답례품도 받는데.
행정안전부는 기부액의 30% 이내(최대 100만원)에서 답례품을 제공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제정할 계획이다.
답례품 제한은 없나.
특산품은 해당 지자체에서 생산·제조한 것으로 국한된다. 지역사랑 상품권(유가증권), 조례로 정한 물품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금이나 고가의 귀금속·보석류, 일반적 유가증권은 줄 수 없다. 기부 유치를 위한 지자체 간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일본은 답례품 경쟁 폐해가 잇따르자 2019년 6월 답례품을 ‘기부액의 30% 이하 지역 생산 물품’으로 제한했다.
기부금 사용처는.
법으로 4가지를 정했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지원과 청소년 육성·보호, 지역 주민의 문화·예술·보건 증진,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원, 주민 복리 증진에 필요한 사업 추진이 그것이다. 일본의 경우 기부자가 사용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지자체가 97%(1723곳)다.
기부 강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강력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기부나 모금을 강요하면 누구든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공무원은 기부를 적극적으로 권유·독려만 해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행안부 장관은 위반 사항이 있는 지자체를 기부 대상에서 1년 이내 기간 제한할 수 있다.

2007년 대선 공약으로 처음 등장

우리의 고향사랑 기부제는 일본과 달리 개인과 공무원의 벌칙 규정을 둔 점이 큰 차이다. 지자체와 민간의 유착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시행해가면서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문제점은 보완하면 될 일이다.

일본 고향납세 실적 추이

일본 고향납세 실적 추이

새 제도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치에서 출발해 정치의 덫에 걸려왔다. 최초 구상은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 나왔다. 당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도시민의 주민세 10%를 고향에 내는 고향세 도입을 공약했다. 일본이 그해 준비 작업을 마친 고향 납세가 모델이었다. 이듬해 18대 국회에선 두 건의 관련 의원입법안이 제출됐지만,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 제출된 법률 제정·개정안 15건도 마찬가지였다. 21대 국회 들어선 지난해 7월 고향사랑 기부금법안이 재발의 돼 이번에 성립됐다. 그동안 제도의 이름과 기부금 공제 방식만 달랐을 뿐 뼈대는 한 가지이고, 지방 소멸지수가 더 올라간 점을 고려하면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관건은 지방 살리기에 대한 기여다. 농어촌은 지금 고혈을 짜야 할 판이다. 비수도권 광역도의 군 단위 기초단체 74곳의 올해 평균 재정자립도(세입과목 개편 전)는 15.8%다. 예산이 1만원이라면 자체 수입이 1580원이라는 얘기다. 경북 봉화군은 재정자립도가 6.7%, 전남 신안군은 7.4%다.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봉급도 못 준다. 지방에 피가 돌지 않으면 결국 나라가 동맥경화에 걸린다.

새 제도의 전국 지자체 재정 유입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강원연구원 전지성 박사는 지난달 포럼에서 그 규모가 1조688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광역단체의 출향민 수·기부 비율·평균 기부액 등으로 도출한 수치다. 이중 30%를 답례품으로 제공한다고 하면 지자체의 활용 가능 재원은 1조1818억원 규모다. 전 박사는 “일선 지자체가 법률 시행 이전에 답례품 등을 꼼꼼하게 준비해서 조기에 제도를 안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향 납세는 뿌리를 내렸다. 전국 지자체가 지난해 받은 기부는 3489만건에 6725억엔(약 7조원)이다. 도입 첫해인 2008년 81억4000만엔(5만4000건)에 비하면 금액이 82배가량 늘었다. 기부자는 수도권과 오사카(大阪)권, 나고야(名古屋)권의 3대 도시권 주민이 압도적이다. 도시·지방 간 세수 격차를 메우고 지방 회생에 기여한다는 당초 목표에 다가섰다. 인구 1만 명 미만 기초단체의 경우 연간 모금액이 자체 세수를 넘는 곳도 있다. 재생의 새 자금줄이 생겨난 셈이다.

재해 복구 루트로 활용되기도

미야자키(宮崎)현 미야코노조(都城·인구 16만 명)시는 지난해 모금 실적이 135억엔(60만 건)으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일반회계 예산이 866억엔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재원이다. 사용처는 보육, 고령자 지원, 인구감소 대책, 중심시가지 활성화 등 8개 분야이고, 기부자는 사업을 선택할 수 있다. 시의 주 특산품은 육류와 소주이고, 현재 답례품은 약 1000개다. 시 고향 납세 담당자는 통화에서 “2014년 시가 답례품을 본격화할 당시엔 업체가 1곳뿐이었지만 지금은 130곳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답례품 개발은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인구 유입의 끈이 된다.

고향 납세는 중앙 정부의 교부금에 목매던 지자체가 시장에 눈을 뜨는 계기도 됐다. 제도 정착에는 세제 혜택 확대, 공제 절차 간소화(고향 납세 원스톱 특례), 인지도 상승이 한몫했다. 답례품은 내 고장 먹거리, 볼거리가 망라돼 있다. 답례품 개수는 고향 납세 중개 포털사이트 후루사토초이스의 경우 35만 개를 넘는다.

제도는 재해 복구 루트로도 활용되고 있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福島)·미야기(宮城)·이와테(岩手) 현에 올 2월까지 답지한 기부금은 4275억엔이다. 2016년 구마모토(熊本) 지진 기부금은 올해까지 535억엔이다. 일본은 고향 납세를 기업으로 확대했다. 2016년부터 기업판 고향 납세(지방 창생 응원 세제)를 실시 중이다. 지자체 사업에 기부하는 기업의 세액 공제를 60%에서 최대 90%로 늘렸다. 2019년 이 제도를 통한 기부는 1327건 33억8000만엔이었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나눔의 기쁨을 누리고 지역 특산품을 즐기면서 소멸 위기의 지방을 살린다. 운용의 묘를 살리면 재난 지역 복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새 제도가 활짝 꽃필 수 있도록 중앙과 지방이 함께 만전을 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