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정부 부분 기능마비/부시,예산 잠정지출법안에 거부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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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일이전 수습 가능성
【워싱턴=연합】 부시 대통령이 예산 잠정지출법안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야기된 미 행정부 업무의 부분적 마비상태는 연휴가 끝나는 8일 자정까지 적극적인 타협안이 마련되지 않는한 정부기능이 본격적으로 마비돼 부시 대통령에게 집권후 최대의 정치적 시련을 안겨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예산위기는 지난 6개월동안 백악관과 의회지도자들이 마련한 재정적자 감축합의안을 하원이 5일 부결시킨데 맞서 부시 대통령이 예산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회가 성안,통과시킨 향후 1주일간의 임시 지출법안에 서명을 거부하고 연방정부 기능을 6일 새벽부터 일시 정지시킴으로써 야기됐다.
하원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투표를 실시했으나 2백60대 1백38표로 필요한 3분의 2에서 6표가 모자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뒤집는데 실패했다.
연방정부 업무가 정지됨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는 주말인 6,7일과 콜럼버스 기념일로 공휴일인 8일로 이어지는 연휴기간 동안 박물관과 국립공원,각종 기념관이 문을 닫아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는 등 일시적인 일부 행정기능의 마비현상이 빚어지고 있으나 항공통제ㆍ체신ㆍ경찰ㆍ보안 등 국가운영에 필수적인 기능은 통상적으로 집행되고 있으며 의회의 양당 지도자들은 새로운 타협안을 마련하기 위해 철야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백악관 고위보좌관들과 야당인 민주당 의회지도자들은 7일 TV프로에 출연한 자리에서 콜럼버스 기념일로 공휴일인 8일을 지나 이번 사태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9일 이전에 사태가 수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회가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 9일부터는 연방정부의 1백10만 공무원이 근무지를 떠나 귀가해야 하는데 이같은 사태는 부시 대통령의 권위실추에 의한 지도력 결여와 함께 미국경제의 위기상황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11월6일의 중간선거와 중동사태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 「개점휴업」사태 왜 벌어졌나/의원들 증세ㆍ복지감축예산안에 반대/부시,국민불편 「통과압력」 이용
미국정부가 개점휴업 상태에 놓이게 됐다.
행정부의 돈줄을 거머쥐고 있는 미 하원이 91회계연도(90년 10월∼91년 9월) 예산안을 확정하지 않아 원칙적으로 행정부가 당장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미 상하원은 백악관과 의회지도자간에 합의된 재정적자 삭감을 위한 5개년 계획안을 부결시켰다. 이 계획안의 테두리안에서 마련된 새 회계연도 예산안도 따라서 결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의회는 예산안 확정까지의 행정마비를 피하기 위해 1주일 시한의 임시 예산지출안을 통과시켜 백악관에 보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시 대통령이 이 임시 예산지출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본예산안 통과를 보장치 않는 임시예산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이 임시예산을 비록 비토했어도 하원이 이를 3분의 2 이상으로 다시 통과시키면 대통령의 비토를 뒤엎을 수 있으나 투표결과 3분의 2선에서 6표가 모자랐다.
미 행정부는 이에 따라 법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당장 한푼도 없게된 셈이다.
당장 1백만명이 넘는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급료를 지불할 수 없게 됐다.
또 연방정부가 집행하던 각종 자금도 끊겼다. 의료보험ㆍ사회복지지원금 등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부시가 임시예산안을 거부한 것도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이다.
즉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같은 고통과 번거로움이 따른다고 책임을 의회쪽에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예산안 부결로 워싱턴 시내에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각종 유명건물이 먼저 문을 닫았다. 워싱턴 기념탑ㆍ스미소니언 박물관ㆍ백악관 관광코스 등이 모두 문을 닫았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도 일시 폐쇄됐다.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트 공원 등 각 국립공원도 공원관리 직원이 출근하지 않아 안내등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이 부결된 직후인 6일과 7일은 주말에다 월요일인 8일은 콜럼버스데이(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기념일)로 휴일이어서 사실상 행정부가 쉬게돼 예산안 파동이 며칠간 유예됐다.
부시가 준예산안을 거부한 배경에도 이 연휴를 이용,의회가 빨리 예산안을 통과시키라는 압력이 깔려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침체경제로부터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우선 행정부의 지출부터 줄여 만성적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향후 5년동안 5천억달러의 적자를 줄이는 장기계획에 바탕한 내년도 예산안을 작성했었다.
행정부는 이 과정에서 다수당이자 야당인 민주당과 옥신각신 6개월여동안 다투다 바로 며칠전에야 소위 여야합의 예산안을 만들어 냈었다.
그러나 본회의 투표결과는 찬성 1백79,반대 2백54표였다. 민주당뿐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반대가 훨씬 더 많았다.
행정부 예산안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세수를 늘리고 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주요골격으로 돼 있다.
여당인 공화당은 세수증대에 반대하고 야당인 민주당은 지출억제에 반대했다.
중산층 이상에서 지지세력이 많은 공화당으로서는 세금이 높아지는 것에 반대했으며 사회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민주당은 지출삭감에 반대한 것이다.
새 예산안은 여야합의를 통해 의료보험지원 삭감,휘발유세ㆍ담배세 인상 등을 통해 내년에 약 4백억달러의 적자를 줄이도록 작성됐다.
이 새 예산안이 확정되자 지금까지 의료보장등을 받아왔던 노인층이나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하는 중산층들이 자신의 지역구 의원들에게 전화를 거는 등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11월 선거를 한달 남짓 앞둔 의원들로서는 선거구민들을 의식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86년 10월에도 예산이 통과되지 않아 약 50만명의 연방공무원들이 몇시간 근무를 못한적이 있으며 81년 11월에도 비슷한 사태가 있었다.
그러나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해 당장 전 행정이 마비되지는 않게 되어 있다.
우선 정부의 기능중 안보ㆍ법집행ㆍ국민보건 및 안전ㆍ치안 등 정부의 필수적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게끔 되어 있다.
물론 지난해 예산이라고는 하나 예산안이 부결된지 7시간 후 미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가 발사되는가 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작전등은 계속 되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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