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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 역사에 있어서 세종시대 만큼 정치가 안정되고 문화가 크게 진흥된 시기도 그리 흔치 않다. 세종은 안으로는 모든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학문과 예술은 물론 과학과 산업을 장려하여 국민의 생활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밖으로 육진을 개척,영토를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넓혀 국경을 안정시켰다.
세종이 이처럼 내정과 외치에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탁월한 두뇌에 의한 창의력과 근면성,책임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세종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일화 한토막­.
세종은 고려초에 중국에서 수입된 편경을 우리의 아악연주에 맞도록 박연에게 새로이 정비하도록 명했다. 박연은 전국을 돌며 돌을 구해 깎고 다듬어 새로운 편경을 제작했다. 그 시연회가 있던 날 세종은 16개의 돌가운데 하나의 돌이 음계가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악성 박연도 뒤늦게 그 소리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다시 고쳐 제작했다.
세종은 과학적 사고의 능력에서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가 지병을 고치려 온천물이 좋은 온양으로 행차할 때의 일이다. 세종은 수레바퀴에 눈금을 긋게하고 그 바퀴가 몇번 도는가를 계산하게 했다. 오늘날 자동차의 마일리지처럼 그는 수레바퀴의 회전수로 서울과 온양의 거리를 측정한 것이다.
바로 세종의 이같은 천재적 청각력과 과학적 사고력이 우리의 글 한글을 낳게 한 것이다.
9일은 544돌 「한글날」이다. 그래서 문화부는 「문화의 달」 10월의 인물로 세종대왕을 선정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갖가지 행사를 벌인다.
그러나 그 어느 행사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한글을 바르게 쓰고 가꾸는 일이다.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더라도 요즘 우리의 말과 글은 외래어의 홍수 속에서 너무나 오염돼 있다. 더구나 우리가 무심코 쓰는 일상어 속의 속어와 비어는 이제 위험수위를 훨씬 넘고 있다.
말과 글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세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바로 말과 글을 잘못 쓰고 있는 데서 오는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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