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중국 지식인/이하경 사회부 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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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북경에 머무는 동안 중국의 지식인 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기자만이 아닐 듯싶다.
연일 울려퍼지는 북경아시아드의 화려한 팡파르와는 대조적으로 북경의 지식인들은 매우 우울하고 비감한 심정으로 1990년의 가을을 맞고 있는 듯했다.
한 대학교수는 『경기 이외에는 취재를 자제해달라』는 정부당국의 외국보도진에 대한 협조요청 사실을 알고는 『현체제에 자신이 없어 공개를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중국당국의 협조요청을 어기고 눈을 피해 접해본 현지 지식인들은 천안문사태 이후의 정책이 『집권층과 당 간부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불만을 힘으로 누르려는 구시대로의 회귀』라고 입을 모아 성토했다.
천안문사태 후 정치사상교육이 강화돼 학생은 물론 교수들까지 매주 하루 오후 내내 인민일보 사설을 교재로 공산당원들로터 학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한 한 교수는 『한차례 교육에 불참했다가 기본급 1백21원중 7원50전을 공제당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식인들의 불만은 구조적인 모순의 고발이기도 했다.
한 교수는 연구실도 없으며 방 한칸짜리 집에서 어린 자녀가 잠들기를 기다려 밤늦은 시간에 겨우 책상에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교수가 받는 임금은 보너스를 포함해 월평균 1백50원. 합작기업에 취직한 제자가 받는 월급이 6백∼7백원,청소부인 근로자의 월급이 2백∼3백원이다.
자신들은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회주의를 하자는 주장이라며 학생들의 반체제 의식과 활동에 『표면적으로는 반대해야 하지만 내심으로는 거개가 동조한다』는 교수들의 은밀한 고백에서 북경이 「폭풍전야의 고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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