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모든 것을 잇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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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압록강 철교
너도 끊어진 채 있구나
푸른 물굽이는 여전한데
40년 동안 잘린채
잔해만 앙상한 너
우리의 아픔만 더해주느나.
지금 우리에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새삼 되묻고 싶은 이 아침.
해방이 되자 우리는 남과 북으로 허리가 잘렸다. 그 바람에 산하가 끊기고 마을이 끊기고 길이 끊겨 발길도 끊겼다. 말이 끊기고 정이 끊기고 소식이 끊겨 핏줄도 끊겼다.
이것을 이으려고 지난 45년 동안 우리는 무진 애를 써왔다. 민족의 지상과제를 「통일」에 두고 자나깨나 이를 되뇠다. 하지만 지금껏 이렇다하게 이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압록강 철교가 끊어진 채 앙상한 잔해로 남아있듯이, 그 옆을 지나는 국제열차 승객이 무심코 지나치듯이 우리의 끊어진 몸뚱이와 아픔을 누가 알아 치유해줄 것인가.
타는 가슴을 안고 이 철교를 넘어간 선열들, 쪽박차고 만주로 들어가던 서러운 겨레의 한, 누가 그 가슴과 그 한을 알아주던가.
끊어져 반 토막 남은 압록강 철교는 곧 분단 45년의 한이요, 겨레의 한이다.
지난 물난리 때 한강 둑마저 끊겼었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끊어진 둑이 도로 한 줄로 이어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하면 되는 것이다. 한마음 한뜻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오늘부터 북경 아시안게임이 시작됐다. 우리 대한의 건아들은 이국의 하늘높이 더 많은 태극기를 휘날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 모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야할 때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동포와 함께 한마음, 한뜻 되기를 시도할 다시없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근래 우리는 어쩐지 간헐적으로나마 남북의 피가 소통되는 듯한 기미를 느끼고 있다. 이국 땅에서 남북이 한마음 한 목청으로 응원을 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하다. 같이 한다는 것은 이어진다는 것, 이어지면 소통하고, 소통이 되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이치다.
어서 잇자. 끊어진 모든 것을. 게르만 민족이 이은 것을 우리가 못 이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한강 둑을 이었듯이 끊어진 대화를 잇고, 끊어진 철교를 잇고, 끊어진 정을 잇고, 끊어진 핏줄을 잇자. 잇고 또 이어서 우리가 반만년 역사의 주인공인 단일 민족임을 보여주자. 슬기로운 배달겨레의 기상과 본연의 자태를 떳떳이 드러내 보여주자. 【김광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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