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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군대(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손자병법에 못난 군대를 여섯가지로 꼽은 얘기가 있다.
싸우기도 전에 달아나는 군대는 주병,나사가 풀린 군대는 이병,명령을 감당하지 못하는 군대는 함병,질서가 무너진 군대는 붕병,상하가 혼란에 빠진 군대는 난병,싸움에 밀려 도망가는 군대는 배병.
손자는 이런 군대를 개탄하며 그 탓을 장군에게 돌렸다.
똑같은 병법을 집필한 오자는 군대를 다섯으로 구분했다. 의병ㆍ강병ㆍ강병은 군대같은 군대지만,무례하고 탐욕스런 폭병이나 나라가 어지러운 것을 틈타 민중을 선동하는 역병은 천군만마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치고 군에 대한 낭만적인 인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군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신병훈련소다. 바로 그 신병훈련소는 한 시절 「기합공장」이라는 악명을 갖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기기묘묘한 궁리들이 떠올랐는지 별의 별 기합들이 떨어지곤 했다. 참기 어려운 것은 그 고통보다도 인격에 손상을 주는 일이었다. 고약한 기합일수록 사람의 자존심과 신체적 약점을 이용하게 마련이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논산훈련소도 요즘은 「논산호텔」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이제 우리나라 군대도 민주시대에 맞는 유니폼으로 모습을 달리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겉에 입는 유니폼 얘기가 아니다. 「마음의 유니폼」 말이다. 바로 그런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르포기사가 도하 신문에 소개되고 있다.
서부전선쪽의 「번개부대」가 보여준 솔선수범이 그것이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이 팔걷고 나서서 민주군대로 병영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사병들에겐 매질과 욕설을 퍼붓지 않으며,사단장과 지휘관들은 부하와 정기적으로 무릎을 맞대고 마음을 열어 놓는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군대를 대화로 통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번개부대」의 대화는 신뢰와 이해를 쌓는 대화였다. 그 결과는 수천명의 병사가 휴가를 나가도 제시간에 귀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기사고도 없어졌다.
장심심,중심심은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가 한 말이다. 장군의 마음도 사람의 마음이고,졸병의 마음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군대도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통할 때 진짜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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