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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천안 학생 강남서 과외 받아

중앙일보

입력

▶‘속도의 혁명’이라 불리는 KTX는 빠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KTX가 개통된 지 2년7개월여가 지났다. KTX 개통은 서울과 지방 간 이동시간을 줄여주면서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지방 상인들은 KTX가 서울 집중 효과를 높여 지방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KTX를 타고 학생들이 서울 강남으로 과외를 받으러 다니기도 한다. KTX 개통 이후 지방경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천안·대전·대구 세 곳을 본지 기자들이 직접 다녀왔다.


주말 오후 1시 대전발 서울행 KTX. 대전 A고에 다니고 있는 김모군이 KTX에 몸을 싣는다. 8개월째 다니고 있는 서울 강남의 영어학원에 가기 위해서다. 김군은 6시 학원수업이 끝나는 대로 다시 8시 서울발 대전행 KTX를 타고 집으로 귀가한다.’

속도의 변화는 삶의 많은 것들을 바꾼다. 개통 2년7개월여가 지난 KTX 역시 일상생활의 많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 대전에서 강남으로 학원에 다니는 김군의 예도 KTX가 바꾼 생활의 변화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지난 2004년 4월 1일 개통된 KTX는 초기부터 많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전국을 ‘일일생활권’에서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어 국민들의 라이프 스타일뿐만 아니라 소비와 유통 등 산업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KTX는 현재 시속 300㎞로 달리며 서울에서 부산까지를 2시간40분만에 주파한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될 당시 서울~부산까지는 무려 17시간이 소요됐다. 속도의 변화가 낳고 있는 시간(거리)의 단축은 피부로 느끼기 힘든 많은 일상의 변화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KTX가 개통된 이후 장거리 통근·통학이 가능하게 됐다. 전체 KTX 이용자 중 당일 돌아오는 비중 역시 37%에 달한다. 과거 지방에 내려가면 하루 이상 체류해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삼성·현대 등 대기업들의 출장 규정도 바뀌었다. 1박2일 출장 지역이었던 부산·대구·목포가 당일 출장 지역으로 바뀐 것이다. 외딴 섬이 아니라면 하루 만에 출장을 다녀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KTX가 불러온 도시 간 이동시간 축소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KTX가 우리나라의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며 지방도시 발전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 KTX가 통과하는 역의 접근성이 좋아져 대기업들이 몰리면서 지역경제의 새로운 경제중심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KTX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천안 KTX 사용자 36%는 정기권

반면 지방의 중소기업이나 상인들은 KTX로 인해 이른바 ‘빨대효과’가 생기면서 지방경기를 차갑게 만든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 집중 효과가 두드러지면서 KTX가 지방경제를 좀먹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과연 KTX가 지방경제에 미친 영향은 어떨까?

서울과 광명을 거쳐 출발한 KTX가 처음 도착하는 도시는 천안이다. 걸리는 시간은 34분. 빠르고 편한 새로운 교통수단은 천안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의외로 천안시 관계자를 비롯해 병원·학원·백화점을 운영하는 이들은 큰 영향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유는 KTX가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서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KTX를 타고 내려오면서 걸리는 시간과 다른 교통수단과의 차이가 적은 편이다 보니 변화도 크지 않다는 게 그 지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도 교통체증만 없다면 40분이면 가능하다.

서울역에서 국철을 타고 내려올 경우 한 시간이다. 불과 26분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러다 보니 천안에서는 “약간의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천안 단국대병원의 조혜련씨는 “고속철 개통 이후 아직 특별한 움직임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환자 수와 이들의 질병에서 지난 3년간 변화를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조씨는 “과거에도 위중한 병에 걸리면 서울로 치료받으러 갔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KTX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조씨는 아산신도시 개발로 도시 규모가 커지며 더 많은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천안 중심가에 위치한 백화점인 야우리의 정형찬 마케팅 과장의 반응도 조씨와 비슷하다. KTX가 천안 상권에 미치는 영향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야우리는 지난 3년 동안 매년 평균 10%의 성장을 보였다. 국토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쇼핑을 위해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이들은 KTX 이용객들의 0.4%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정 과장은 “아쉬운 수치지만 우리 고객은 아닙니다. 서울로 명품을 사러 올라가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 백화점은 명품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천안 지역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부동산이었다. 행정도시 이전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주머니가 두둑해진 이들과 심리적인 자신감을 얻은 이들이 소비를 늘렸기 때문이다. 정 과장은 “부동산 경기가 주춤한 지난 연말 이후 매출 성장세가 완만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시청 관계자는 KTX의 개통으로 여러 장단점이 생겼다고 밝혔다. “우선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아져 시민들의 삶이 더 편해졌습니다.” 친인척을 만나거나 용무가 있어 서울을 다녀오기가 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전부터 계획되기는 했지만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도 이전해 오고 있다. 또 아산신도시 개발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일자리도 늘어나고 있고, 인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하지만 천안에 들어온 KTX가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고 시 관계자는 밝혔다. 물론 지금보다 KTX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역세권 조성을 위한 노력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높다.

지방선거와 총선에 나선 후보들은 고속철이 들어오면 도시가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별로 바뀐 게 없다는 실망도 있다. 오히려 KTX로 인해 일자리가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충남북부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이곳에 살지만 서울로 출근을 하면서 실질적인 경제생활은 서울에서 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설명한다. 천안 KTX 사용자의 36%가 정기권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천안에 새로 생긴 직장보다는 서울로 직장을 구해 나간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천안을 떠나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도 늘고 있다. 경제가 보다 활성화된 곳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문가들은 KTX로 인해 새로 생긴 직장이 6개라면, KTX로 인해 빠져나간 직장은 4개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조금은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대전은 상권과 병원 위축

천안 다음으로 KTX가 닿는 곳은 대전이다.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정확히 49분이 걸린다. KTX 사정으로 5분 넘게 지연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55분 안에 이동이 가능하다. 새마을호나 버스 등과 비교해 보면 이동시간이 40분 이상 단축됐다.

▶KTX 안내 책자 뒤편에는 성형외과·피부과 등을 안내하는 홍보글로 빼곡하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증거다.

KTX 안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넥타이를 맨 남성들과 등산복 차림을 한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나 방금 기차 탔어. 곧 도착하니까 역에 나와 있어”라는 말들이 계속 들려왔다. 또 “지금 제가 출발하니까 업무를 마치고 6시쯤에 명동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도 들렸다. 서울 시내에서도 지하철을 이용하면 1시간 이상 소요되는 곳이 있다. 기차와 전철이라는 차이점을 빼면 대전까지는 서울 인근의 생활권에 편입됐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이다.

대전역은 매우 분주했다. 그렇지만 분주함과 달리 역 주변에는 띄엄띄엄 빈 상가가 보였다. 대전광역시 내부자료에 따르면 KTX 개통 이후 대전역이 위치한 동구 지역 공실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12월에는 사무실 공실률이 1.6%였지만 2004년 12월에는 9.9%의 공실률을 보였다. 또 점포 공실률은 7.2%에서 17.8%로 10.6%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상공회의소 기업지원과 전용필 대리는 “대전역이 위치한 동구는 대전의 옛 도심이다. 중요 상권이 정부청사가 위치한 유성구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공실률이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바로 KTX 개통이다. 전 대리는 “대전 시민들이 옛 도심 주변에서 구매행동을 하기보다 KTX를 이용해 서울로 올라간 것도 상가의 공실률 부진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동시간이 줄어들면서 다양한 물건 구색을 갖춘 서울 지역의 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는 지적이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한 의류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타격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은 의류업 등을 중심으로 ‘탈대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KTX를 타고 서울의 동대문이나 남대문을 찾는다는 얘기다. 대전 D고등학교에 다니는 송재환(17·가명) 군은 “대전에서 판매하는 옷은 이미 서울에서 유행이 한철 지난 옷들이다. 차비 부담이 있더라도 친구들과 서울 동대문으로 가 옷을 사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대전 S쇼핑몰에서 바지를 팔고 있는 상인 역시 “예년과 비교해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 전적으로 KTX 개통에 따른 여파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우리 가게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손님이 줄어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전은 의사 1인당 인구비율이 541명으로 서울에 이어 2위다. 이 때문에 중소병원 폐업률은 의약분업 이후 줄곧 10%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소병원에 비해 덩치가 큰 대학병원 암환자 등이 줄어 영향을 받고 있다.

을지대학병원 암센터의 한 관계자는 “KTX 개통 이후 암환자가 줄면서 암 진단기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KTX 개통으로 이동이 편해지면서 암이나 기타 고가장비를 필요로 하는 환자 등을 중심으로 일부 이탈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전의사회 홍승원 회장은 “KTX 개통 이후 암환자나 중환자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체 질병 진료자 수가 늘었기 때문에 개통 전후의 외래환자 수는 큰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해지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정부 대전청사 주변의 공무원 아파트인 ‘샘머리 아파트’의 경우 공무원 입주율이 50%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아파트는 1998년 입주 시점에는 공무원 입주율이 90%를 넘었다. 인근 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입주율이 줄어든 것은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직원들이 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을 원하는 일부 학생들 역시 KTX를 이용해 서울 강남지역의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 E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한 교사는 “개통 전에도 몇몇 학생들이 자가용이나 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학원을 다녔었다”며 “서울까지 이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일부 수요가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경제 아직은 큰 영향 없어

물론 KTX 개통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KTX가 개통되면서 물류거점 도시로서 대전의 역할이 더 강화된 것. 대전이 서울과 부산의 가운데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다 철도교통 이용이 더 원활해졌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진택배와 현대택배가 대전에 물류거점 기지를 열었다. 상공회의소 전 대리는 “철도교통이 화물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앞으로 물류거점으로서 대전의 역할이 더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KTX를 이용해 대전보다 50분 정도를 더 내려가야 하는 대구광역시는 상대적으로 KTX로 인한 영향이 작았다. KTX 개통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백화점이나 병원 등의 경우 ‘탈대구 현상’이 심화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구의 대표적인 백화점으로 꼽히는 동아쇼핑의 경우 KTX가 개통됐지만 2005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오히려 11.5%의 증가를 기록했다. KTX 개통보다는 지역경제의 좋고 나쁨이나 지하철역 개통 등에 따른 유동인구 변화가 더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동아쇼핑 홍보팀 황보성 대리는 “고가 손님 중 일부가 서울로 빠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오히려 명품을 포함한 전체적인 매출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3년 정도 부동산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구매력이 높아진 점이 매출상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백프라자의 최영대 팀장 역시 “대구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소비성향이 있기 때문에 명품 등 고가품 구입은 서울에서 몰래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KTX가 생기기 이전에도 택배나 승용차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 역시 “KTX 개통 초기 서울 집중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지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며 “다만 대구 지역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경제가 침체돼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백화점 관계자들의 말과 달리 시내 중심의 일부 상가들은 공실률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동성로를 방문해본 결과 점포 서너 개 건너 하나 정도는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동성로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번화가임에도 빈 점포가 보이는 것은 그만큼 대구 지역 경기가 침체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KTX 개통으로 지역경제 발전을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았던 병원 역시 큰 변화는 없었다. KTX로 인한 서울 집중 효과보다는 병원업계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가 지역 병원들의 폐점이나 영업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영남대학 병원의 경우 올 10월 하루평균 외래환자 수가 2800명에 달해 KTX 개통 이전과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병상 가동률 역시 89~9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병원 이명섭 홍보협력실 팀장은 “KTX가 개통되면 환자들이 서울로 빠져나가지 않겠느냐는 가정은 있었지만 숫자상으로 큰 변화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대 병원 관계자 역시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나 첨단장비를 찾는 환자들의 경우 서울로 이동할지 모르지만 꼭 KTX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이런 환자들은 이전에도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서울 병원으로 떠났다”고 밝혔다. 사정은 대구가톨릭병원 등 여타 병원들도 비슷했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2005년 실시한 KTX 개통에 따른 대구시내 서비스업종 매출액 변화 조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매출이 40.5% 늘었다고 답했다. 또 18.7%는 ‘변화가 없었다’고 응답했고 불과 4.0%만 ‘감소했다’고 답했다. 또 KTX 운행으로 인한 도심 상점가의 변화 정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별로 변화 없었다’가 47.7%, ‘도심 상가가 활성화됐다’가 22.8%로 나타났다. 반면 ‘오히려 위축됐다’는 응답은 4.0%에 불과했다.

대전에서 서울로 학원 다니는 학생의 주말

“KTX 과외 덕분에 합격했어요”

수능을 한 달여 남긴 C양(18)은 현재 한국외대 세계화 전형에 수시합격했다. 지난 1월부터 8개월 동안 서울 강남 선릉역에 위치한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한 결과다. 영어면접과 영어에세이 작성을 주로 가르치는 S학원은 C양에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다만 수업시간과 거리가 문제였다. 평일에는 학교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매주 토·일요일반을 신청했다. KTX 개통 이후 서울이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기 때문에 거리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토요일 학교수업이 있는 주는 방과 후 오후 1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샌드위치·햄버거 등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영어신문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2시 서울역에 내린 C양은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이동해 2시50분부터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오후 6시에 끝난다. 수업 후에는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KTX 막차가 밤 10시 넘어서까지 있기 때문이다. 학원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 저녁을 해결하고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한다. 스터디 그룹에는 부산·포항에서 올라온 학생도 있었다. 2시간여의 스터디를 마친 C양은 온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일요일은 강남 학원의 수업 시작이 낮 12시30분이다. KTX에 몸을 실은 그는 토요일과 같은 일과를 반복한다. 토요일보다는 조금 이른 오후 7시30분에 집으로 돌아온다.

C양은 “힘들기는 하지만 버스 탈 때보다 피로도 훨씬 덜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좋다”며 “이렇게 서울에서 과외를 한 덕분에 수시에 합격한 것 같다”고 말했다.

C양이 KTX를 타면서 한 달 동안 쓴 차비는 24만4800원. 서울~대전 간 편도 요금이 1만5300원이기 때문에 한 주 왕복요금으로 6만1200원이 든다. C양은 “차비가 부담이 되긴 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철도 마일리지가 쌓이면 석 달에 한 번 정도는 공짜로 탈 수 있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나타난 ‘빨대효과’

센다이는 죽고 시즈오카는 일어서

일본 도쿄 동북쪽에는 ‘미니 도쿄’라고 불리던 센다이시가 있었다. 하지만 1980년 일본의 고속철 신칸센이 개통된 이후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신칸센은 도쿄와 센다이의 거리를 확 줄였다. 350km 떨어져 있어 평소에는 4시간 걸리던 이동시간이 1시간30분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러자 센다이에 본사를 두고 있던 기업들이 도쿄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또한 센다이에 나와 있던 지사도 도쿄로 옮기거나 아예 폐지됐다. 결국 센다이시의 자체적 경제력은 사라졌고 도쿄의 위성도시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본에서 최초로 ‘빨대효과’라는 용어가 나왔다. 도시의 주요 기능들이 빨대에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후 신칸센의 영향으로 도시 경제가 위축되거나 성격이 바뀌면 빨대효과라는 표현이 사용돼 왔다.

빨대효과로부터 살아남은 도시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도쿄 서남쪽에 위치한 시즈오카시다. 이곳에 신칸센이 들어서면서 도쿄와 오가는 시간이 한 시간대로 줄어들었다. 당장 사람들이 도쿄로 쇼핑을 떠나기 시작했다. 시즈오카는 당시 백화점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도시였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기 때문에 도쿄로 떠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즈오카시 관계자들은 당장 대책회의를 열었다.

시즈오카의 장점을 홍보해 도쿄로부터 기업을 유치해 오자는 것이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미쓰비시와 다카시야마 백화점을 유치했다.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나갈 정도로 강한 구매의욕이 있는 소비자들이 있는데 무엇을 하느냐며 설득하고 다닌 것이다. 백화점들이 들어서자 관련 기업들도 시즈오카에 지사를 둘 수밖에 없게 됐다.

신칸센으로 활력을 얻은 도시도 있다. 산들로 둘러싸여 접근이 어려웠던 야마가타시는 신칸센이 개통되며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이곳의 산성천·유황천·염화물천·유산염천 등 다양한 온천과 스키장 등을 찾는 관광객으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가 생겼고 지금도 주민들은 관광수입으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신칸센 개통은 일본에서 많은 도시의 운명을 갈랐다. 한 걸음 더 도약한 도시가 있는 반면 위성도시로 전락한 경우도 있었다. 경쟁력이 무엇인지 고속철 시대의 한국 지자체장들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석남식·조용탁·최남영 기자[st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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