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전·현 의장, 노 대통령과 정치 현안 입장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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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차기 대선을 노리는 여권 내 양대 주자다. 이들이 3일 정치 현안을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정 전 의장은 최근 단행된 외교안보 라인 인사를 빗대 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창당 실패론'에 이어 나온 발언이다. 반면 김 의장은 '벤치론'을 앞세우며 '노 대통령과 함께하는 정치권 새 판 짜기'를 주장했다. 당내의 '노 대통령 배제 신당론'과 차별화했다. 양측의 미묘한 차이가 향후 본격화될 차기 경쟁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노 대통령 후반 역할은 벤치에서 응원하는 것"
김근태 의장 "내가 스타 플레이어 되겠다"

열린우리당 김근태(얼굴) 의장이 3일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지금은 거의 전반전이 끝나가는데 전반 말미에 대량 실점했다"며 "후반전이 되면 노 대통령은 벤치에서 성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KBS 파워인터뷰' 녹화방송에 출연, "후반에 응원하는 분도 필요한데 그분을 벤치에서 멀리 가게 하는 건 맞지 않다"며 "노 대통령이 지지자 결집을 위해 할 역할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참여하면 호남 편중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면서도 "다만 지지층 재결집에서 대통령이 주전 선수는 아니다. 대통령이 도와야겠죠"라고 말했다. 또 "비노(非노무현)나 반(反)한나라당 통합신당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노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6월 당 의장에 취임하면서 "노 대통령의 탈당은 안 된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정계개편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노 대통령의 거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발언은 당내에서 일고 있는 '노 대통령 배제 신당론'과 거리가 있다. 노 대통령의 역할을 '벤치론'으로 설명한 것도 눈길을 끈다. 주변에선 "노 대통령이 동참은 하되 주도적 역할이 아닌 후원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 "정무특보단은 오해 소지 있어"=김 의장은 "곧 후반전이 시작된다"며 "지금까지는 김근태가 벤치에서 뒷받침했는데 후반전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면서 "제가 동네에서 조기축구를 하는데 가끔 간절히 바라면 눈먼 공이 발에 와서 맞는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정무특보단 구성에 대해선 "당에서 정무수석을 요청했을 때는 안 하다가 느닷없이 (정무특보단을) 임명하는 것은 뜻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고 잘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용호 기자

"국민 박수받는 인사가 당에도 정부에도 좋아"
정동영 전 의장, 코드 인사 우회 비판

열린우리당 정동영(얼굴) 전 의장이 3일 "인사 때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안타깝다"며 "가능한 한 국민에게 박수를 받는 인사를 하면 당에도 좋고 정부에도 좋다"고 말했다. 라디오 원음방송의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에 출연해서다. 우회적 어법을 쓰긴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녹아 있다. 최근 있은 외교안보 라인 개편에 대해 한마디로 "국민들이 박수칠 인사가 아니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정 전 의장은 외교안보 라인의 개편 전 노 대통령에게 "널리 인재를 구해 드림팀을 짜라"고 요청했던 김한길 원내대표의 발언도 옹호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인사에 있어서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듣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김 대표가) 당연히 할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김근태 의장이 외교안보 인사에 대해 아무런 평가 없이 "포용정책 원칙이 다시 확인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정 전 의장은 또 북한 핵실험에 대한 정부 대응과 관련,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나타난 현실이 어렵기 때문에 잘했다고만 말하는 것은 강변"이라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의 현재 모습에 대해서도 "지역구도의 정치를 깨뜨리고자 하는 정신은 지금도 대단히 고귀하지만, (실제로 열린우리당이 지역구도를 깨뜨렸느냐는) 그 점에선 성공하지 못했다"며 "아무래도 어떤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친노세력의 '당 정체성 우선' 목소리와도 다르다.

지난달 독일에서 귀국한 정 전 의장은 행동반경을 서서히 넓히고 있다. 주변에선 그의 정치행보가 본격화할 시기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나 친노 세력과는 거리가 있는 시각으로 그가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설 경우 열린우리당의 진로와 정계개편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독일에 머물며 통독 과정을 연구한 정 전 의장은 이달 중순께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한반도 전문가들과 회동할 예정이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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