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문학연구기획 지원제도|문인들 피해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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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문학연구기획 지원제도가 겉돌아 문인들의 피해가 그다.
문학연구기획 지원제도는 문예진흥원이 문예지로부터 문인과 사전 합의된 작품의 주제·집필기간·분량·방향·내용 등을 밝힌 사업계획서를 받아 심의, 문인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문예진흥원이 지금까지의 문예지에 대한 지원을 작가·작품에 대한 직접지원제로 바꾼 올해부터 실시키로 한 사업.
90년도 지원금은 편당 50만∼1백 만원으로 층1억5천만원이며 문예진흥원은 7월말까지 신청서를 제출토록 각 문예지에 통보했었다. 그러나『문예중앙』『창작과 비평』『문학과 사회』『실천문학』『세계의 문학』『문학과 비평』『한국문학』『문학정신』『한길문학』『동서문학』『외국문학』등 주요 계·월간 문예지들은 이 지원사업이 사전 검열성격을 띠고 있어 창작의 자유와 편집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장시와 중·장편소설 및 장막희곡에만 지원, 문학장르의 자연스런 발전을 막을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신청서를 내지 않고 이제도의 시행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문예지의 이러한 집단거부 움직임에 문예진흥원은 지원대상을 전 장르로 확대한 수정안을 내놓으며 8월말까지 지원신청서를 제출하도록 다시 통보했으나 이 수정안에 대해서도 주요 문예지들은 『본질적으로 개선된 것이 하나도 없다』며 계속 신청서 제출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신청마감일인 8월31일 현재 문학연구기획 지원 금을 신청한 문예지는 20여 개. 주요 종합문예지들은 거의 빠졌으며 자체적으로 원고료지급이 어려운 군소 문예지가 대부분이다.
이 20여 개 문예지의 신청서를 대상으로 문예진흥원은 18일 심의위원회를 열 예정이어서 결과에 따라 적잖은 파란을 불러올 것 같다.
문예진흥원의 계획대로라면 성찬경·황동규·김원일·김양수·조대현·김용성·최동호씨 등 7인의 문인으로 구성된 문학지원 심의위원회의 심사결과에 따라 이번에 금년도 전기 분 7천5백 만원을 문예지를 통해 문인들에게 지원하게 된다.
문예진흥원의 한 관계자는『확정된 사업인 만큼 예정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비록 주요문예지들이 빠져 있다 해도 그대로 추진할 뜻을 비췄다. 이 관계자는『이 제도의 취지가 문인에 대한 지원이어서 문예지들이 필자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협조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를 담보로 문예지에 대한 지원책을 요구하는 것 같다』며 일부 문예지의 이같은 거부움직임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주요 문예지들은『문인들이나 문학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 없이 멋대로 현실성 없는 제도를 내놓고 신청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구시대적 관료주의적 발상』이라며 문예진흥원을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이 제도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작품을 놓고 심의해 사전검열의 오해를 부를 수 있으며 특히 편집권을 침해해 각 문예지 나름의 성격을 말살, 문학을 획일화시킬 소지가 있음을 문화정책 입안자들에게 홍보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대부분의 문인들은 주요문예지가 빠진 상태에서 이 제도를 밀어붙이려는 문예진흥원은 물론 문인을 볼모로 자사의 이익을 취하려는 일부 문예지에 대해 다같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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