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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영광과 좌절 본사 특별취재팀 50일간 현장에 가다(41)적자 투성이 국영기업 앞다퉈 매각|민영화 바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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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영기업의 민영화바람이 중남미전역에서 휘몰아치고 있다.
국가사회주의를 표방, 항공·철도·석유등 국가의 주요기간산업에서부터 극장·슈퍼마킷·디스코데크에 이르기까지 국가경제의 대부분을 정부가 떠맡아 왔던 아르헨티나를 비롯, 70년대 기적의 경제성장을 성취한 브라질과 남미국가 중 비교적 안정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칠레까지도 금년 들어 국영기업 팔아 치우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또 중미의 부국으로 한때 풍요를 구가하며 국제사회에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멕시코 역시 국영기업의 매각을 위한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중남미 국가들이 이처럼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파탄지경에 이른 국가경제를 어떻게 해서든 구해 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이 있다.

<인플레 악화 요인>
중남미 국가들의 공통적인 최대 고민거리는 해마다 불어나는 정부 재정적자이고 국가경제의 숨통을 죄는 재정적자의 상당부분은 국영기업의 적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 현지 경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따라서 재정파탄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재정적자의 폭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서는 적자의 주범 격인 국영기업을 매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는 점이 민영화조치의 주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시 발행되는 경제전문지『클라린』지의 논설위원 홀리오 세바레스씨는 89년 아르헨티나 국영기업의 절반 이상이 엄청난 적자를 기록, 정부에 재정적 압박을 가했고 국가총생산액(GDP)의 5%나 되는 89년도 정부재정적자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국영기업들의 적자는 단순한 기업차원의 적자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부의 통화남발을 촉발, 곧 인플레로 직결되고 있다.
세바레스씨는『인플레는 곧바로 생산위축을 동반하게 되고 이는 곧 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지며 이자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생산코스트가 높아지므로 물가상승은 당연한 귀결』이라면서 메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영화조치는 바로 이같은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단절시키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했다.
브라질에서 최근 발표된 공식통계에 따르면 89년 말 현재 국영기업의 매출액은 브라질GDP의 45%를 차지, 브라질 전체총생산의 절반 가량을 국영기업들이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규모 면에서 볼 때도 5백대 대기업 중 1백30개가 국영기업으로 전체의 26%를 차시하고 있고 50대 은행 중 24개 은행이 국영은행이며 매출순위 20대 기업중 8개 기업이, 총자본순위 20대 기업 중 17개 기업이 국영기업이다.

<8개 기업만 흑자>
그러나 흑자를 내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아 최대이윤 20대 기업 중에서 국영기업은 8개에 불과하다. 반면 브라질에서 가장 많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20대 기업 중 10개 기업이 국영기업들이다.
GDP의 45%를 차지할 만큼 규모 면에서는 엄청나지만 각 기업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적자 투성이 여서 정부로 하여금 적자보전을 위해 국고를 투입케 함으로써 재정에 주름살이 가게 하기는 아르헨티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중남미 국영기업들이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번째 이유는 기업의 규모에 비해 종업원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첨단기술의 개발과 합리적인 경영기법으로 불필요한 인력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비해 이들 국가에서는 기술개발이 부진한 가운데 적정인원의 3∼4배 종업원을 갖고 있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별 하는 일없이 월급만 꼬박꼬박 챙겨 가는 유령직원이 태반이고 보면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클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적자가 발생하는 깃은 당연한 귀결.

<정치인들 청탁 탓>
국영기업들의 이같은 과다한 종업원 보유는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용 취직부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국회의원선거·주지사 선거 등 각종 선거를 치를 때마다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공약이 바로 당면과제인 실업자해소 문제인데 선거 후 취직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기구와 국영기업의 인원을 증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바로 이같은 정치적 요인 때문에 중남미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공무원 수와 국영기업체 직원수가 적정인원의 몇 배씩 되는 불합리한 현상을 빚고 있다.
일단 늘어난 조직은 집권자들이 선거기반의 약화를 우려해 축소하려 들지 않고 설사 축소를 시도한다 하더라도 기존 조직의 엄청난 반발에 부닥쳐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알폰 신 정권이 그랬고, 브라질의 샤르네이 정권이 89년 서머플랜을 실시하면서 민영화조치를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국영기업체들의 방만하고 무원칙한 기업운영이 적자발생의 두 번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승객 60%가 공짜>
공기업의 특성중 하나인 주인의식의 결여 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을 떠맡고 있는 경영진을 비롯, 하부조직까지도 이윤창출과 비용감소를 위해 창의적이거나 적극적인 자세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철도회사는 승객의 40%만이 표를 구입해 기차를 이용하고 나머지 60%는 「공짜손님」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 철도공사의 인일 적자액이 2백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또 아르헨티나항공도 무임 탑승객이 많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주로 정부가 국회의원 및 주지사·고급공무원들에게 선심용으로 배포하는 무료탑승권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정부는 국회의원들에게 수도인 부메노스아이레스까지 왕복 항공 티킷을 월 한차례씩 제공하고 있는데 의원본인 2장, 부인용 2장, 자녀용 2장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티킷을 받은 의원이나 그 가족들이 이 공짜 티킷을 주위 사람들에게 헐값에 팔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아르헨티나 국영기업이 기록하는 적자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체 국고적자의 60∼80%를 차지함으로써 정부로서도 팔아 치우는 방법 외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지난해 취임한 메넴 대통령은 취임직후 32개 국영기업체의 민영화 또는 임대추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행정개혁법안을 제정,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영화대상업체는 채널11, 13등 2개 TV방송사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에어라인항공사, ENTEL(전학공사), 옴타르 여행사, LA해운, 벨그라노 및 엑셀시오르 등 2개 라디오방송국,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지하철 등 이며 임대될 국영기업체는 도로 청, 철도회사, 엔코텔 우체국, 수도 국, SEGBA국영가스, YPF 석유회사 등이다.
아르헨티나는 이와 함께 시한부 긴급 경제법안을 제정, 재정적자의 큰 요인이 됐던 모든 종류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한편 정부의 재정적자를 감소하고 작은 정부, 능률적인 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부장급 이상에 해당하는 공무원을 행정부가 직권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토록 하고 있다.
브라질 역시 금년3월 콜로르 대통령의 취임직후 의회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도 행정부가 국영기업체를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안을 마련, 즉각 매각 대상에 10개 대기업을 포함시키는 등 광범위한 민영화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집권통치자들의 이같은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 구조의 일대 개혁을 시도하는 민영화 조치가 과연 그들의 취지와 의도대로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지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알폰신과 샤르네이 정권의 실패경험에 비춰 볼 때 민영화조치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될 수만 명의 실업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것이며, 또 민간기업들이 이를 인수한다 해도 경영개선을 이루기에는 여러 난관들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남미 경제전문가들은 과거 정권들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치밀하고 효율적인 중장기계획을 수립,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해야 하며 관련업체 및 근로자들의 거센 반발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의회와 민간 자본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일이 최대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국영기업체를 인수하여 빠른 시일 내에 경영개선을 이 룩, 국가경제 회복의 기들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외국자본과 경영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민영화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 <글=이은윤 특집부장·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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