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뒤의 「안전대책」(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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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꽝』하는 굉음과 함께 삽시간에 천장이 무너져내리면서 흙더미가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겁에 질려 『으앙』하는 남매를 껴안고 바둥거렸다. 그러나 흙더미는 사정없이 우리 모자를 삼켰다. 숨이 막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11일 발생한 인천시 송림5동 축대붕괴사고로 남편과 두자녀를 잃은 송준아씨(23)가 울먹이며 전하는 매몰의 순간은 참담했다.
송씨는 흙속에 매몰된 23가구 24명중 유일하게 구조된 생존자. 송씨는 유가족들의 오열이 가슴을 찢는 영안실에서 숨진 남편의 영정을 넋나간 표정으로 응시하며 하염없이 통곡했다.
『부처산(해발 67m) 꼭대기를 깎아 학교를 세웠으면 산밑에 사는 서민들의 안전도 생각해야하지 않습니까.』
유가족들은 『산밑에 사는 송림동주민들의 목숨은 파리목숨이냐』며 선인학원측의 횡포를 규탄했다.
『늘 불안했습니다. 평소에도 석축이 군데군데 금이 가고 축대위에 뿌리를 내린 울창한 아카시아 나무가 지붕쪽으로 기울어 비만 오면 토사가 주택가로 밀려와 가슴을 졸이곤 했습니다.』
『선인학원과 구청측에 안전대책을 세우라고 수차례 건의도 하고 진정도 했지요. 그러나 구청측은 위험시설안전진단을 하면서도 이 지역을 위험시설지역에서 제외시켰습니다.』 13일오후 매몰자발굴현장에 몰려든 1백여 주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1백여억원을 들여 안전한 옹벽을 쌓고 축대주변을 택지로 조성,아파트를 건설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사고현장을 찾은 정부ㆍ여당의 고위관계자들에게 인천시간부가 밝히는 때늦은 「안전대책」.
23명의 목숨을 흙더미속에 매장시키고 나서야 항구적인 안전대책을 세우겠다고 목소리 높이는 인천시의 대민행정은 「소잃고 외양간고친다」는 식의 일선행정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었다.<인천=김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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