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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2030보다 2030명 취업이 더 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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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규 고용 창출하여 청년 미래 보장하라"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취업준비생과 대학생들의 외침이었다.

한 시간 만에 집회를 마친 젊은이들은 '청년실업자 50만 시대'라고 쓰인 피켓을 앞세우고 광화문 네거리까지 500여m를 가두행진했다. 참석자들은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길거리 시위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세계 12대 경제대국'에서 젊은이들이 일할 직장을 마련해 달라며 길거리에 나선 광경은 시민들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며 길거리로 나섰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30여 명이 1일 덕수궁 앞에서 "정부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고용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 "장밋빛 청사진보다 일자리 필요"=시위에 참여한 조덕호(23.여)씨는 벌써 30여 개 기업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경기도 지역 대학 4년생인 조씨는 학점도 좋은 편이고 토익점수도 800점이 넘지만 매번 낙방했다. 그는 "지망한 외국계 기업 중 한 곳은 경쟁률이 1000대 1에 달했다"며 "내년 2월 졸업 전에 취업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젠 자신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경기도 K대 4년생인 백길현(26)씨도 행진에 동참했다. 1년간 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실무경력을 쌓았다고 자부하지만 아직까지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그는 "우리 학교의 경우 네 명 중 세 명이 졸업 전에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비전 2030'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지만 정작 우리에겐 일자리 2030개가 더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또 "'고교 땐 대치동 입시학원가' '대학 시절엔 신림동 고시촌' '졸업 뒤엔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라는 '3대 입시 클러스터'가 존재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취업준비생 윤미선(28.여)씨도 개인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둔 뒤 올 5월 취업전선에 다시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윤씨는 "나이가 많다고 면접도 못 본 경우가 여러 번"이라며 "쉽고 편한 일만 찾는다고 구직자들 탓만 할 게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만성화된 청년실업 문제=취업준비생들이 거리행진에 나선 것은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가두행진에 앞서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청년실업, 대학생의 목소리로 말한다' 심포지엄에선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토론자로 참석한 '백수연대' 대표 주덕환(38)씨는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취업이 어려운 졸업예정자), 청백전(청년백수전성)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청년실업이 구조화.만성화됐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대학원생 최효광(29)씨는 석사를 마쳤지만 취업하지 못해 자괴감에 빠져 있다고 했다. 그는 "석.박사급 인력이 사회에 경쟁력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9월 현재 20대 실업률은 7.2%로 전체 실업률(3.2%)의 두 배가 넘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9월까지 20~29세 취업자 수는 월평균 402만여 명에 그쳐 1995년의 502만여 명에 비해 11년 만에 95만 명이나 줄어들었다. 지난달 1일 실시된 서울시 7,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은 105대 1이라는 사상 최대의 경쟁률을 보였다.

한양대 최기원 취업지원센터장은 "'일자리 창출 없는 성장'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 청년층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구조적인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대학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포지엄을 주최한 바른사회시민회의의 현진권 사무총장은 "청년실업이 사회 현안이 됐지만 정작 청년실업자들에게는 자신의 울분을 표출할 기회조차 없다"며 "이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aeyani@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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