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Q : '임금피크제'가 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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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임금피크제는 임금(賃金)과 피크(peak)란 단어를 합쳐 만든 말입니다. 임금은 근로자가 일한 대가로 받는 돈입니다(간혹 회사가 만든 물건이 안 팔려 돈이 없을 경우엔 임금으로 돈 대신 물건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죠). 피크라는 영어 단어는 학교에서 배웠듯이 '산꼭대기' '최고점' '최대량'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금피크제는 무슨 뜻일까요. 알쏭달쏭하죠?

임금피크제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임금에 대해 살펴보는 게 순서입니다. 회사가 임금을 정하는 방식은 크게 연공급제와 직무급제 두 가지가 있답니다.

연공급제란 근로자 개개인의 학력.자격.연령 등을 감안해 근무한 기간(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을 주는 방식입니다. 이 제도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하고 회사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만들어진 것이지요. 연공급제에선 근무 기간이 길수록 임금을 많이 받게 되죠.

이와 달리 직무급제는 근로자가 어떤 일(직무)을 하느냐에 따라 임금 수준을 정합니다.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를 기준으로 임금의 수준을 정하는 것입니다. 직무급제를 실시하는 회사에선 이익을 많이 내는 데 이바지한 근로자일수록 임금을 많이 받습니다.

그렇다면 연공급제와 직무급제 중 어느 게 더 좋은 제도일까요. 여기에 대한 의견은 근로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근로자는 임금을 가급적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풍족하게 돈을 쓰고, 집이나 자동차도 빨리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회사를 오래 다니고 나이 많은 근로자라면 연공급제를 더 좋아할 것입니다. 반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근로자라면 직무급제가 낫다고 생각하겠죠. 임금을 회사의 벌이에 따라 적정하게 주려는 회사도 사정에 따라 의견이 갈립니다. 회사가 생긴 지 얼마 안 돼 젊은 직원이 많다면 당장 직무급제보다 연공급제를 적용하는 게 임금 부담이 적겠죠. 하지만 회사가 생긴 지 오래돼 나이 많은 직원이 많은 회사라면 반대로 연공급제보다 직무급제를 선호할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이 다르다 보니 임금 주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연공급제를 채택한 곳이 아직 많습니다. 연공급제를 쓰는 이웃나라 일본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제도는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일을 더 잘한다는 전제에서 도입된 건 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연공급제를 실시 중인 회사는 많은 임금을 줘야 하는 나이 든 직원은 내보내고, 돈을 적게 줘도 되는 젊은 직원을 뽑고 싶어합니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보다 젊은이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려고 하겠죠. 반면 근로자 입장에선 안정된 직장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요즘같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에선 더욱 그렇죠. 이처럼 근로자와 회사 입장이 다르다 보니 서로 다투는 일이 잦습니다. 근로자들이 일손을 놓고 파업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이런 다툼 때문이랍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임금피크제입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 일이 서툰 근로자가 경험을 쌓아서 일을 가장 잘할 때 가장 많은 임금을 주되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임금을 줄여 주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꼭대기에 오르면 더 높은 데가 없어 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회사 입장에선 적정한 임금으로 근로자를 쓸 수 있어 좋고, 근로자 입장에선 일자리를 보장받게 돼 서로 좋은 거죠. 특히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임금피크제의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도 하답니다. 갈수록 아이를 적게 낳다 보니 일할 젊은이가 줄어 나이 많은 근로자를 계속 써야 할 상황이 된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이라는 금융기관이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답니다. 이후 이 제도를 도입하는 곳이 차츰 늘어 현재 50여 곳에서 시행 중이랍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박사는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의 고용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고, 회사로서도 경험이 풍부한 근로자를 쓰는 데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도입하는 곳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제 임금피크제가 실제 어떻게 적용되는지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죠. 이 회사는 근로자가 54세일 때 받는 임금을 최고액수로 정하고, 55세부터 정년퇴직(59세)할 때까지 임금을 매년 줄여서 주고 있답니다.

가령 54세 때 100만원을 받았다면 55세엔 75만원, 56세엔 55만원, 57세부터 정년 직전까지는 35만원만 받게 됩니다. 대신 55세가 되면 이전에 하던 일을 접고 경험을 쌓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컨설팅이나 상담 등의 업무를 합니다. 이렇게 월급을 적게 받는 게 싫은 근로자는 55세 때 그냥 회사를 그만두면 되죠. 이렇게만 보면 임금피크제는 모두가 만족할 것 같이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고 근로자 간에도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근로자와 회사가 '임금피크제'도입에 앞서 머리를 맞대 좋은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차진용 기자

고령화 사회서 나이 들어도 일할 수 있게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 주며 도입 장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이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에 올해부터 보조금(임금피크제 보전수당)을 주고 있습니다. 회사가 최소 5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고, 근로자 대표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합의한 뒤 이 내용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명문화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조금은 54세 이상 근로자가 임금피크제로 인해 임금이 10% 이상 깎일 경우 깎인 임금의 절반을 매월 최대 50만원까지, 최장 6년간 줍니다.

예를 들어 54세 때 월 300만원을 받던 근로자가 55세가 되면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250만원만 받게 된다면 깎인 임금(50만원)의 절반인 25만원을 정부에서 보조해 주는 것입니다.

정부가 나랏돈을 써가면서 왜 임금피크제 도입을 장려하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상태) 때문입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식생활 개선과 의료기술 발달로 수명은 늘어나는데 아이를 적게 낳아 노인은 늘고 젊은이는 줄어요.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답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00년 7%를 넘어선 데 이어 2018년이면 14%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어요. 이처럼 노인 인구 비중이 커지면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됩니다. 노인을 돌보기 위해 많은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죠.

회사를 일찍 그만두고 나오는 근로자가 많아질수록 그 부담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이 들어도 최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임금피크제를 지원해 주는 게 필요해진 것이죠.

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게 되면 회사와 근로자 간 다툼의 소지도 줄게 돼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의 하나인 노사분규를 줄이는 효과도 있답니다.

차진용 기자

*** 바로잡습니다

11월 2일자 E6면 '틴틴경제'의 임금피크제 관련 기사에서 신용보증기금의 정년퇴직 연령은 58세가 아니라 59세가 맞습니다. 이에 따라 54세 때 100만원을 받던 근로자는 임금피크제에 따라 55세엔 75만원, 56~57세엔 55만원, 이후 정년까지는 35만원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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