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한 재미작가 김용익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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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용익, 그는 1948년 서툰 영어를 가지고 미국에 와서 지금은 영어로 소설을 쓰는 주요 작가로 떠올랐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 85년 12월15일자는 재미작가 김용익씨(70)를 「미국문단에서의 한 성공적인 이야기」라며 한 페이지를 할애, 그의 문학세계를 소개했다. 48년 도미, 그곳에서40여 년간 영어를 배우고, 영어로 소설을 쓰고, 여러 대학에서 소설 창작론을 가르치던 김씨가 지난 5월 피츠버그 뒤켄스대 영문학과교수를 정년퇴임하고 3일 귀국했다.
『미국으로 건너온 동포들은 다들 미국생활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덜 떨어져서인지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그 흔한 자동차 운전 한번 못해보고, TV며 전화도 들여놓을 줄 모르고…. 옆집 미국인을 보면 「김서방」 「울산댁」같고, 미국 곳곳에 있는 바다를 보면 죄다 고향 앞 바다 같기만 하고요.』
1920년 경남 충무에서 대어나 42년 일본 아오야마학원 영문과를 졸업한 김씨는 전시 일본에서 배운 그 짧은 영어 덕택으로 48년 도미한 이후, 57∼60년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강의한 것을 빼곤 줄곧 미국에서 대학강단을 전전하며 소설을 썼다.
『6·25를 통해 한국을 본 미국인들에게는 한국이 형편없는 미개국으로 비쳐져있었어요. 그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서·삶·문화·사회 등 모든 것을 얼버무려 한국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기에는 소설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거든요.』
미국생활에 적응 못하고 「촌놈」으로 남은 고독과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의무감이 어우러져 기도하듯 김씨는 매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소설을 썼다. 남의 나라 언어, 그것도 짧은 영어로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김씨는 원고지 1천장 중 고작 10∼20장 밖에 못 건지는 피나는 습작기간을 거쳤다.
50년대 말 「꽃신」 「행복한 계절」 「한국의 딸」 등으로 미국문단에 데뷔한 김씨는 지금까지 단편 30여편, 장편 4편, 희곡 3편을 미국의 유수 문예지나 출판사를 통해 발표하며「정확하고 쉬운 언어로 한국의 토속적 냄새를 물씬 풍기는 미국의 중요한 작가가 됐다.
특히 그의 작품 「행복한 계절」 「푸른 씨앗」 「해녀」 등은 미국이나 덴마크의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고 추천도서로도 선정됐으며 TV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적 분위기를 외국인에게 외국어로써 전하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주제·문체에서 미국작가보다 한 수를 더 펴야만 미국문단에서 살아남고 독자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한국적인 것만 강조하면 그들의 눈에 한국은 다시 희화화돼 기이한 나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표준어에 정통한 작가라야만 전라도·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향토성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듯 우선 영어에 정통해야 그 영어에 한국을 실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발표 영문 장편소설 2편과 장편 희곡 2편의 원고보따리를 갖고 온 김씨는 한국에 계속 머무를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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