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일 잘돼 고향 길 열렸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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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번 회담이 잘돼서 북에 계신 큰 형님·막내누님과 죽기 전에라도 한번 만나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4일 밤 힐튼호텔에서의 남북총리회담 첫 만찬준비책임을 맡았던 이산가족 이 호텔 식음료부차장 여정필씨(46)는 참았던 망향의 한과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오르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여씨는 이날 만찬장에 마련된 식사 및 음료수의준비와 60여명의 접대요원을 교육하는 중책을 맡아 나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온 정열을 쏟았다.
강영훈 국무총리와 연형묵 북한정무원총리가 만찬에 앞서 10여분동안 단독 대좌했던 지하1층 오크룸의 내부단장도 그의 손길을 거친 것이었다.
황해도 송화군 진풍면 내안리가 고향인 그는 일주일전 자신이 근무하는 힐튼호텔에서 남북총리회담 만찬이 열린다는 사실을 통고 받은 뒤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내가 꾸며놓은 방에 두분 총리가 앉아 말씀을 나누는 모습을 지척에서 보면서 나도 모르게 연 총리에게 형제·친지의 생사여부라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전할 수 없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대지주였던 그의 부모(모두 사망)는 51년 1·4후퇴 당시 그 많은 재산을 남겨둔 채 8남매 중 여씨(당시 7세)를 비롯한 네 자식만을 데리고 남으로 내려왔다.
당시 김일성 대학에 재학 중이던 맏형 정택씨(살아있으면 60세)는 외지에 있었고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셋째누이 연옥씨(48)는 혼자 남게될 할머니의 수발을 들기 위해 하는 수 없이 고향에 남아 있어야 했다.
내러온 가족 가운데 둘째 누이도 세상을 떴고 둘째형 정연(53·국교교감·전주시 완산동) 둘째 누이 연화(50·군산시)씨와 여씨 등 3남매만 남았다.
올해로 호텔종사 25년을 맞은 여씨는 이날 만찬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남북대화의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연회가 끝난 만찬장을 정리하고있었다. <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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