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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자유화 말만 백번 천번 하면서 정부, 거꾸로 규제만 계속 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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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사진=신동연 기자]

-한.미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데요.

"가족끼리, 친구끼리도 미웠다 고왔다 하지 않습니까. 서로 이견을 조율해야 할 부분은 항상 있는 거지요. 우리 국익과 장래를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게 미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본과 기술의 유입, 그리고 제3국과의 국제관계 수립에서도 미국의 힘이 필요합니다. 통일이 된 뒤에도 글로벌 시대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요즘 미국에선 '한국이 우리 편이 맞느냐'는 소리도 한다는데요.

"미국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희생해 한국의 자유와 민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을 '배신자'로 생각하게 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에 대해서도 일부 사안에 있어 '우린 너희와 의견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반미'를 목표로 삼는 것은 곤란합니다."

-북한 핵실험 이후에도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계속해야 하나요.

"나 자신, 한때 남북 경협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경협은 독일식 '상호주의'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베풀면 저쪽도 나와야 합니다. 지금은 한쪽(남측)만 지키고, 다른 쪽(북측)은 안 지켜도 되는 식입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해서 남북 경협이 시작됐는데, 북한은 최근 핵실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남북경협은 '평화통일'이란 목표를 위한 수단입니다. 목표는 변할 수 없지만 방법(경협)은 수정할 수 있습니다."

-한.미 FTA 반대 목소리가 있습니다.

"(무역 자유화 하면) 당장 외국 자동차가 길거리를 누비고 외제 화장품이 넘칠 거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은 안 나갑니까. 그게 여기서 보이지 않으니까 'FTA 하면 큰일'이라고들 합니다. 개방하면 제조업 등도 죽는다고 하는데, 안 죽습니다. 오히려 자극받아 이겨야겠다는 경쟁심이 생깁니다."

-정부의 기업 정책에 대해서는.

"자유화한다는 말은 백 번 천 번 하면서 거꾸로 규제만 늘립니다. 제가 한국무역협회장 시절에 '공무원을 반으로 줄이고 월급은 두 배로 올려야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밥그릇에 연연해 이런저런 것(규제)이 나오지요. 그건 시대에 역행하는 겁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대표 단체가 제 목소리를 못 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치.사회.경제가 성숙하지 못해 그렇습니다. 경제단체 대표가 무슨 얘기를 하면 '경제철학가가 나라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 기업을 위해 저런 소리를 한다'고 여깁니다. 또 재계 대표도 국가와 사회를 볼 때 어떤 목소리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재계 대표에겐 그런 '스테이츠맨십(statesmanship.정치적 수완, 정치적 견지)'이 필요합니다."

-상당수 그룹이 형제 간 갈등과 분란을 겪었는데, LG.GS.LS 그룹은 화목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가족끼리 협력해라. 조그만 이익을 탐하다 더 큰 것 잃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가훈을 지킨 덕입니다. 정신적으로 부자가 되면 금전적으로 부유한 것보다 더 좋은 게 많지요. 정신.금전 둘 다 부자면 좋지만 세상은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가게 마련이지요."

◆구평회 회장=LG그룹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넷째 동생.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GS칼텍스)를 세우는 일을 진두지휘했고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 회장을 지냈다. 해외 인맥이 두터워 '재계의 외교관'으로 불린다. 2002년 월드컵의 일본 개최가 거의 확정적이던 1994년 '2002 월드컵 유치위원장'을 맡아 한.일 공동 개최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94년 한국무역협회장을 맡고는 수출 증대와 정부의 규제 완화를 위한 고언을 거침없이 쏟아내 '원조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기도 한다. 구자열 LS전선 부회장, 구자용 E1 사장, 구자균 LS산전 부사장 등 3남1녀를 뒀다.

김동섭 산업데스크,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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