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서 얻은 지혜-이윤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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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직은 따갑기만 한 늦여름의 햇살을 피해 나무그늘 평상에 나와 앉은 이웃집 아줌마들이 국민학교 2학년인 딸아이의 생일이 음력으로 며칠인가를 물어와 우연히 모아둔 가계부를 펼쳐보게 되었다.
요즘은 한단에 3천원씩 하는 배추가 10년전엔 고작 2백80원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고, 좋은 꿈을 꾼 뒤 남편에게 꿈 판돈도 적혀있어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액세서리 포장 부업으로 번돈이 기타수입에 한달1천2백원이라고 기재돼 있었고 도라지와 우엉은 근으로 사 집에서 손질해 가계의 지출을 줄였던 알뜰함도 눈에 띄었다.
요즘의 내 생활은 어쩌면 돈 쓰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풍조가 깔려있지 않나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돈 몇 푼이 싸다고 새벽 번개시장을 가시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찾아다니시는 시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낡은 와이셔츠를 입으시고도 값비싼 삶의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시아버님의 산 교훈도 한층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이런 의미 있는 생각을 하며 딸의 생일이 음력으로 칠월 열 이틀이라는 것을 찾아 전해주고 나니 가계부를 쓰는 보람이 새롭게 느껴졌다.
이제껏 미루어둔 올 여름 휴가는 부모님 곁으로 가 마음 깊은 가족들의 얘기를 나누고 시원한 수박화채라도 먹으며 오붓한 가족의 정리를 새기며 가계지출도 덜고 싶다. <서울 개포동 주공아파트 54동 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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