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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야 넓혀 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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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애국심에 불타는 천재 과학자 남박사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격분한 나머지 타임머신을 만들어 고구려가 한국 역사의 일부임을 증명해보이기로 한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타임머신을 발명한 남박사는 어렵게 만난 고구려의 왕에게 질문을 던진다. "주몽 폐하 진정 고구려의 역사는 한국의 것입니까, 중국의 것입니까." 갑자기 인상이 찌푸려지며 왕이 되묻는다. "고약한지고, 한국은 뭐고, 중국은 뭔데, 감히 고구려를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흔히 우리는 대한민국을 단일민족국가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수많은 외침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나라를 지켜냈던, 그래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훌륭한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라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며,'하나'라는 그와 같은 믿음은 때로 너무도 견고하고 튼튼해 보여 쉽게 흔들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말해지고, 또 너무나 쉽게 인정되기에, 그러한 믿음이 오히려 의심스럽지는 않을까.

민족이란 보통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종족과 조상, 언어와 문화, 정치와 종교 등 원초적 유대를 공유하게 되는 인간집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란 이 같은 민족을 하나의 분명한 실체로 이해하고, 그것을 특정한 방식을 통해 이념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단일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속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이야기할 때,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 민족의 정체성만은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할 때, 거기에는 확실하게 존재하는 분명한 실체로서의 민족 개념이 포함된다.

어떤 점에선 민족과 민족주의는 국민 통합이라는 탁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령 억압적인 식민 통치로 고통받는 식민지 시민들에게 민족주의는 자민족의 자결을 추구하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세력과의 대결을 통해 독립 의식을 고양하는 해방의 도구로 이용돼왔다. 물론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기에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국가의 성립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우리는 한 민족이며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말은 어떤 어려운 논리보다도 쉽게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그런데 문제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실제로는 매우 혼란스럽고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민족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등 다른 어떤 '-주의'들과 함께 뒤섞인 상태로 나타나며, 또 빈번하게 다른 의미로 전용된다.

게다가 관점에 따라서는 이러한'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은 어떤 목적에 의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적인 상상물일뿐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은 아니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혈통과 언어, 문화와 종교 같은 민족을 구성하는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모두 논리적인 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말도 문화도 전혀 모르는 해외동포 3세는 우리 민족에 포함될까 포함되지 않을까. 다니엘 헤니 같은 혼혈아는 우리 민족일까 아닐까. 민족이란 정치적 상상물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 같은 시각에서는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국민국가의 토대를 위해, 혹은 국가나 집단의 통합을 위해 허구적으로 고안된 산물이다. 겉으로는 확고해 보였던'동일성'에 대한 강렬한 믿음도 시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거나 시야를 약간 확대하기만 해도 곧 희미해지거나 퇴색하고 만다.

뿐만 아니라 민족을 부각시키는 민족주의 속에는 위험성 또한 도사리고 있다. 우리 민족의 안녕을 강조하고 우리 민족의 정통성만을 고집할 때 역설적으로 그 논리 속에서 나와는 다른 민족은 타자화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약소민족과 식민지 국가에 민족주의는 저항의 논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자기 민족의 영광을 위해 거리낌없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제국의 이념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식민지의 민족주의건 제국의 민족주의건, 그와 같은 논리 속에는 이미'(우월하고 올바른)나'와 '(열등하고 그릇된) 너'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이 내재돼 있다는 점에서 사실 그것은 서로 동일한 논리의 반복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번엔 이 문제를 현실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자.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일까 중국의 역사일까. 이런 문제가 나오면 대부분의 학생은 역사 왜곡의 문제를 들면서 중국을 비판한다. 우리 민족이 세운 고구려의 역사는 당연히 한국의 역사라는 논리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가 과연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논리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일까. 우리 민족이 그 넓은 만주벌판을 호령했다는 건 신나고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구려의 역사를 누군가의 소유물로 주장한다면, 그것은 또한 고구려와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현대의 역사가 가하는 일방적인 폭력은 아닐까. 반대로 여전히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적인 세계 정치의 논리 속에서 우리만이 민족과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민족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관용 속에서 우리 안의 타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개방적인 민족주의가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까.

결론은 여러분의 몫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당연시돼 왔기에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 너무나 견고하고 튼튼해서 완벽해 보이는 사실 속에는 오히려 더 많은 균열이 내재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의심을 품고 거기에 균열을 만들 때 흥미로운 논술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의 문제와 연결할 때 세상을 보는 시야는 비로소 확대된다.

또박또박국어논술학원 고등부 대표강사

◆기출문제
-숙명여대 2006학년도 정시 <문항 2>
-이화여대 2006학년도 수시2학기 <문항 1-4>
-중앙대 2004학년도 수시 2학기 <논제 1>
-경희대 2003학년도 수시1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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