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중동사태로「벙어리 냉가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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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번 중동사태로 인해 동유럽국가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있다.
유가인상이 예상됨에 따라 거의 모든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적잖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만 동유럽국가들의 경우는 특히 심각한 처기에 놓이게 됐다.
우선 이들 동유럽 국가들은 그 동안 이라크에 많은 무기류를 판매해 왔으나 유엔의 대 이라크 무기 금수결의로 큰 곤란을 만나게된 것이다.
여기에다 이들 국가들은 이번 분쟁의 당사국인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각종 프로젝트 참여, 인력과 기술수출을 하고있는데 전시체제에 들어감에 따라 당장 난관에 봉착하게됐다.
더욱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예상되는 국제 원유가의 인상이다.
과거 소련의 위성국들이었던 이들은 소련으로부터 국제시장 가격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싼값에 원유공급을 받아왔으나 내년1월1일부터는 국제시세대로 공급을 받도록 예정돼 있고 그 대금은 하드커런시(경화)로 결제해야만 하는「딱한」처지에 처하게됐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자유시장 체제로의 경제개혁에 따른 후유증과 그 대가를 적지 않게 치러야 할 판이다.
가뜩이나 하드커런시 보유고가 낮은 동유럽 국가들로서는 유가가 오를 경우 그만큼 대금결제용 하드커런시가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자본주의 경제로의 전환의 맹아기에 있는 동유럽국가들로서는 설상가상의 난국을 맞게된 것이다.
기름 값 인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불가리아·체코슬로바키아·동독 순이 될 전망이다.
이들 국가들은 배럴당 유가가 20달러 일 때 각각 외환보유고의 80∼44%를 써야하던 것이 배럴당 30달러로 오르면 1백20∼66%를 대금으로 내놓게돼 특히 불가리아 같은 나라는 대금 결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된다는 것이 미국 모건 스탠리 투자자문회사의 분석이다.
소련의 저렴한 원유공급으로 73년의 1차, 79년 2차 석유파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던 동유럽 국가들로서는 벌써부터 이 같은「다중고」로 인해 제3의 석유파동을 일시에 느끼고있는 양상이다.
이런 충격을 다소라도 덜기 위한 방안으로 체코는 최근 자동차용 휘발류 값을 50%나 대폭 인상했다.
체코는 특히 산업 각분야에 있어 수입원유 의존도가 주변국들에 비해 훨씬 높아 사정이 호전되기는 매우 힘들 전망이다.
유가인상의 반점은「단순히」경제 쪽에서만 나타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대기공해 등 환경오염 문제가 동유럽은 물론 유럽전체로 확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국영 생산시설 등은 그렇잖아도 공해방지 등에 전혀 관심조차 두기 않아 그로 인한 오염피해가 막심했는데 유가가 인상될 경우 주연료를 기존기름에서 갈탄으로 바꿀 수밖에 없어 대기오염에 대한 우리가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동유럽국가 모두가 대 이라크 무기공급 선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음에 비추어 이번 무기 금수로 인한 피해도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6위의 대 이라크 무기 수출국인 체코는 물론 불가리아 역시 동병상련의 입장이다.
지난해 1억달러 어치의 무기를 이라크에 판매한 폴란드 또한 올해 이미 4천만달러 규모의 무기를 수출, 그중 20%에 불과한 8백만 달러 어치의 원유만을 이미 대신 받고 나머지 3천2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원유는 받지 못한 상대에서 유조선의 뱃길이 묶이자 난감해하고 있다.
폴란드는 더욱이 대 이라크 진출 건설인력이 3천명에 이를 정도로 해외송금이 주 외화 가득원이었으나 이 또한 사정이 악화돼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라크에 3백50명을 보내놓고 있는 체코나 각종 운동코치 등 3백40명의 인력을 쿠웨이트에 송출해놓고 있는 불가리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헝가리도 연간 3천만달러 규모의 교역을 이라크와 하고 있었으나 앞으로는 사정이 여의치 않을 전망이어서 골머리를 앓고있다.
이들의 대 이라크 교역량이 서방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동 안 대소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점과, 앞으로 달러 등 하드커런시를 축적해야하는 이들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하면 이번 중동사태로 인한 동유럽국가들의 고민은 여간 심각한게 아니다.
나아가 동유럽각국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지원해야하는 서유럽국가들을 포함, 서방 세계 또한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추가비용을 들여야할 전망이다.
후세인의「도박」에서 비롯된 이번 중동사태의 영향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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