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인 뜸한 베이징 외곽서 '접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 공작원의 아지트로 사용됐던 중국 베이징(北京)시 차오양(朝陽)구 둥쉬화위안(東旭花園) 내 3089호 가옥. 주민 장(張)모씨는 "최근 이 집을 출입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 집은 늘 이렇게 잠겨 있었다"고 전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베이징 중심에서 5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창청호텔.

'일심회' 간첩 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장민호(44)씨 등 5명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곳은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둥쉬화위안(東旭花園)'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과 검찰에 따르면 최기영(41)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은 지난해 8월 25~30일, 이진강(43)씨는 2003년 4월 4~7일 북한 대외연락부의 비밀아지트인 둥쉬화위안 3089호에서 사상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씨와 이씨는 베이징 현지에서 북한 대외연락부 '유기순 부부장'과 '김정용 과장'을 만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기관에 압수된 최씨의 물품 중에는 둥쉬화위안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포함됐다고 한다. 현지 취재 결과 둥쉬화위안과 창청호텔은 한국인들이 잘 드나들지 않은 곳이었다.

◆ 낡은 빌라가 비밀 아지트=둥쉬화위안은 한국인들이 밀집한 왕징(望京)과는 한참 떨어진 베이징 동쪽 끝의 교외에 위치해 있다. 현지 부동산 업자는 "둥쉬화위안은 지은 지 10년쯤 된 낡은 빌라촌"이라며 "이곳에 세를 얻거나 집을 사겠다고 문의한 한국인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소개했다.

주소는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솽차오둥루(雙橋東路) 18호원(十八號院)이고, '3089호'는 18호원을 구성하는 4개의 빌라촌 가운데 제3단지의 89호라는 뜻이다. 둥쉬화위안 안에는 천지낙원 등 2개의 별도 아파트 단지가 형성돼 있다. 동쪽 지역인 3단지의 중간쯤에 위치한 '3089호'는 붉은 벽돌담과 자주색 나무문으로 이뤄진 낡은 2층 빌라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지하실과 다락, 차고를 포함한 연건축면적은 250㎡가량이다.

1,2층 창은 파란색 선팅이 돼 있거나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얼핏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출입문 바로 왼쪽에는 '솽차오둥루 18호원'이란 파란 글씨 옆에 '3089'라는 호수가 빨간색 글씨로 쓰여 있었고, 출입문 오른쪽은 차고로 구성돼 있다.

주민 왕(王)모씨는 "이 집에 사람이 출입하는 것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며 "만일 사람이 드나들었다면 주로 심야나 새벽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삼륜 인력거를 끌고 있는 장(張)모 노인도 "이 골목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이 집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북한인이나 한국인이 이곳 근처에 살았다는 얘기도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최기영씨는 28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베이징 비밀아지트(둥쉬화위안)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난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접촉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최씨는 "조경 문화 탐방과 침술 치료차 베이징을 방문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진강씨도 2003년 4월 4~7일 베이징에 간 사실은 인정했지만 "사업 구상차 갔다"며 북한 공작원과의 접촉 사실을 부인했다.

◆ 접선장소는 호텔=둥쉬화위안과 함께 또 다른 접선장소는 창청호텔이었다고 수사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손정목(42)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창청호텔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리는데 처음보는 남자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자신들은 조선족으로서 사업을 하는데 시간이 있으면 대화하자고 하며 동석을 했다"고 해명했다.

창청호텔은 쉐라톤 호텔과 손잡은 중국의 5성급 호텔로 베이징 중심에서 북동 방향으로 5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창청호텔을 찾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베이징 여행사들은 전했다. 수사 관계자는 "장민호씨의 USB 메모리칩에서 나온 문건 내용과 사건 연루자들의 행적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서울=문병주 기자

◆ 대외연락부=통일전선부.작전부.35호실 등과 함께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산하에 있는 4개 대남 관련 부서 중 하나다. 주임무는 남한 내 친북 조직을 유지, 확대하고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침투하는 공작원(간첩)을 관리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외오촌 조카로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인 강주일(본명 강관주)이 부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조선 노동당 사건(92년)의 이선실, 부여 간첩 사건(95년)의 김동식, '부부간첩' 사건(97년)의 최정남.강연정 모두 대외연락부 소속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