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밟은 고국땅(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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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저 가방이 내짐인디… 내것인디.』
22일 오후7시30분쯤 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 입국장.
수하물운반장치 주위를 따라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마치 이어달리기라도 하듯 꼬리를 물고 맴돌고 있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6시50분 대한항공전세기편으로 50여년만에 고국을 찾은 국내무연고 사할린동포 모국방문단.
대부분 70세가 넘은 1백10명의 할아버지ㆍ할머니들이 국내연고자를 찾지못한채 애를 태우다 「사할린거주 한국인을 위한 한일적십자사 공동사업체」의 후원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밟게된 것.
첫 항공여행길에 오른 이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위에 실린 자신들의 여행짐을 끌어내리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정기노선승객들이 수속을 마치고 빠져나간 입국장에 도움청할 손길도 마땅치 않자 이들은 무작정 자신들의 짐을 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것.
중요인사 한두명의 입국에도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던 수하물담당 항공사직원이었지만 노인들이 끌어내리지 못한 짐으로 운반장치가 멈추고 작동정지를 알리는 전자음이 계속 울려대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담당항공사직원에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입을 삐쭉 내밉디다.』
노인들의 모습을 보다 못해 검사대를 빠져나와 운반장치에 올라서 대신 짐을 나르던 세관직원이 길게 혀를 찼다.
『광복절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큰 기대속에 40∼50년만에 한많은 조국을 찾아온 노인들을 환영행사는 못해주더라도 따뜻하게 맞아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들과 동승해온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사업부 김상만씨(35)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른채 친척의 주소가 적힌 꼬깃꼬깃한 쪽지를 움켜쥔채 뒤늦게 입국장을 빠져나가는 노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설렘과 기대로 가득차 있는 듯했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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