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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론의 평화(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어느 곳에서든 평화가 깨지면 모든 나라,모든 곳의 평화는 위험하다.』 미국의 F D 루스벨트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후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진실이다. 이라크전쟁이 바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
중동이 어수선한 사이에 파키스탄에선 정변이 일어났다. 그동안 내전으로 무정부상태에 있던 라이베리아에 미군이 상륙한 것도 이라크­쿠웨이트전쟁의 와중이다. 지금 중동지역은 언제 어디서 탱크가 밀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세계정세는 어쨌든 평화를 기조로 삼아왔다. 미국과 소련은 기본적으로 무기경쟁을 하지 않으며,서로는 주먹 쥔 평화가 아니라 미소짓는 평화를 유지한다는 총론의 합의를 보았다. 그것이 지금의 세계질서라면 질서다.
그러나 미소,두 나라가 언덕위의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세게 곳곳에선 때는 이때다 하고 총성이 들려오고,분란이 일고 있다. 평화는 총론의 합의일 뿐 각론의 평화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평화의 주체인 소련마저도 내정의 불안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연방국들의 독립요구는 가라앉을 기세가 아니며,경제는 개혁의 목소리와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감자 한톨의 평화마저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평화는 일시적으로 아름다운 무지다』고 말한 시인이 있었다. 어디선가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잠시 모르고 있는 상태가 평화라는 것이다.
세계의 평화는 어느날 갑자기 강대국들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무수한 작은 평화들의 합계일때 가장 견고하고,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갖는다는 교훈을 우리는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파키스탄만 해도 그렇다. 군부세력은 말이 좋아 부토정권의 부패를 보다못해 그를 내쫓았다고 하지만 지난 19개월동안 이들 세력은 세계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점에선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설마 지금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미국이나 소련이 전쟁을 일으킨 우리를 어떻게 하랴 하는 심리가 터무니 없는 전의를 돋운 셈이다.
결국 평화의 조건은 밖에서 찾기 보다는 우리의 안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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