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도 「남북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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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중해를 사이에 둔 남북 문제가 유럽의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전후 45년간 유럽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이었던 동서 긴장은 해소됐지만 지중해 너머로 마주 대하고 있는 남부 유럽국들과 북아프리카 회교국간의 「남북 긴장」이 유럽의 장래를 불안케 하는 갈등 요인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전문가들은 동유럽 공산국들의 붕괴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에 이어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국들의 동요가 앞으로 포괄적 의미에서의 유럽 안보에 가장 큰 위협 요소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알제리에서의 최근 변화와 계속되는 북아프리카 회교도들의 유럽 이민이 이러한 가능성을 예고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실시된 알제리 지방 선거에서 정통주의 회교 세력인 이슬람 구국 전선이 압승, 알제리를 시발로 튀니지·모로코 등으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가 확산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유럽인들 사이에 높아지고 있다.
식민주의의 청산과 정통 회교주의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이들 과격파 회교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될 경우 이 지역에서 유럽의 경제적 이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는 곧 지중해를 사이에 둔 남북간의 긴장과 불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게 유럽인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이 지역의 낙후된 경제와 높은 인구 증가율도 심각한 긴장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많은 북아프리카인들의 유럽행 러시를 유발함으로써 유럽 전역에 극단적 인종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로베르 라퐁은 회교도들의 유럽 이민 증가에 따른 유럽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제3의 위기」로 표현하고 있고,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프도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는 『냉전이후 유럽의 새로운 걱정거리를 찾는다면 바로 여기서 (인종적 갈등)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중해와 접해 있는 남부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이러한 걱정에서 예외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북아프리카에 가장 근접해 있는 스페인이 이같은 불안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둔 유럽과 북아프리카간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지중해안보협력회의 (CSCM·가칭)의 설립 구상에 스페인이 가장 적극적인 것도 지브롤터 해협 하나사이로 북아프리카와 맞닿아 있는 지리적 근접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스페인의 주도로 프랑스·이탈리아·포르투갈 등 4개국이 공동 추진하고 있는 이 구상은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국간의 제반 문제를 CSCM 설립을 통해 여기서 공동 해결해 나간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있다.
지난 15년간 동서 유럽의 협상 창구로 이용돼온 유럽안보협력회의 (CSCE)를 모델로 구상되고 있는 이 회의체를 늦어도 오는 9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CSCE회의 시점까지는 공식화한다는 것이 이를 추진하고 있는 4개국의 공동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서 긴장 해소 이후 동구 지원 문제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EC (유럽공동체) 위원회 내에서도 유럽의 다음 불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중해 남쪽의 북아프리카 쪽으로 눈길을 돌려야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EC위원회 내 지중해 정책 담당자들이 최근 북아프리카 8개국에 대한 33억 달러의 대규모 경제 지원 계획을 제안하고 나온 것이 EC위원회내의 이같은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전후 45년간 유럽을 지배해온 동서의 이념적·군사적 긴장은 끝났지만 남과 북의 경제적·사회적 긴장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려하고 있다. 역시 역사는 긴장의 연속에 다름 아닌 것 같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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