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 국제학술회의 산파역 일ㆍ중국학자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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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학문교류 통한 남북화해 기대”
남북한학자들이 동시에 참가하는 오사카조선학 국제학술회의가 3일 개막된다. 회의개막에 앞서 오사카회의를 준비해온 오청달교수(오사카 경법대학장보) 최응구교수(북경대 조선문화연구소장)를 각각 만나 이번 회의의 의의ㆍ준비과정 등에 대해 알아봤다. 이들은 사실상 이번 회의를 총괄하는 주최측의 대표자들이기도 하다.【편집자주】
◎오청달<오사카 경법대학장보>/조총련계이지만 북쪽 두둔 않겠다
『이번 제3차 조선학국제학술대회의 가장 큰 의의는 한국문제와 관련된 사상최대의 학술적 논의라는 데 있습니다.』
이번 학술토론회를 준비해온 주역중의 한사람인 오청달교수(오사카경법대 학장보)는 이번 대회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자기 자신이 조총련계이긴 하지만 그같은 사실이 이번 학술대회의 토론방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주최자로서 남과 북 어느 한편도 「두둔」할 수 없는 일』이라며 주최측의 성향과 관련된 일부 비판적 시각을 못마땅해 했다.
다음은 오교수와의 일문일답 요지.
­이번 학술대회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적으로 매우 높다. 이번 회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인가.
『남북한학자가 동시에 참여하는 한국관련 학술회의로는 사상최대의 규모라는 데 있다.
중국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창설 이후 최대규모로 해외에 학자를 파견했다.
역사ㆍ언어ㆍ자연과학분야에서는 세계적인 1류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수준도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선학에 대한 국제교류가 본격화된 점이 특징이다.』
­이같은 대규모의 학술대회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학술대회를 열기로 이미 88년 합의가 됐었다. 86년 1차대회와 88년 2차대회에는 한국이 참석치 못했으나 3차회의에서는 한국측도 참석시켜 5백∼6백명 규모로 할 예정이었으나 참석자가 크게 늘었다.』
­오교수가 조총련출신이기 때문에 학술회의성격을 의심하는 시각이 없지 않은데….
『나는 학생시절 조총련계통으로 유학생동맹에도 가입한 적이 있는 만큼 부인하지 않는다. 현재도 부모와 동생 5명이 61년 공화국(북한)에 들어가 평양에 살고 있다.
그러나 개인 하나를 통해 오사카 경제법과대학을 평가하지는 말라.
대학에는 모든 사람이 같이 있다. 우리대학에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도,일본검찰청출신도 있다.
우리대학은 일본문부성으로부터 인정받은 정식대학이며 커리큘럼에도 주체사상은 없다.
학생도 민단ㆍ조총련출신과 어느쪽에도 관련 안된 학생이 고루 섞여있다.』
­이번 회의를 일본에서 개최키로 결정한 후 평양을 먼저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대회의 「친북성향」이 높다고 보는 것 같은데….
『대회결정 후 집행부인 본인과 북경대 최응구교수,모스크바대 미하일 박교수,미하와이대 강희웅교수,캐나다 토론토대 배운지교수 등 5명이 남북 모두에 인사를 하자고 결정한 뒤 먼저 갈 수 있었던 평양에 갔다. 그뒤 89년 9월 한국을 방문하려 했지만 본인과 미하일 박교수에게는 비자발급이 거부돼 방문하지 못했다.』
­북한은 당초 1백50명을 보내겠다고 했으나 갑작스레 11명으로 대폭 줄였다. 그 경위를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북한은 6월말 1백33명을 보내겠다고 통보한 뒤 입국수속을 하다가 7월11일 갑작스레 11명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해 나자신 당황했다.』
­불참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북측이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관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더이상 언급회피).』
­북한불참으로 회의진행에 차질은 없나.
『이번에 참석하는 북조선인사는 북조선사회과학을 지도하는 기관의 사람들로 교수들보다 더 정예다. 별 문제는 없다.』<오사카=안성규특파원>
◎최응구<북경대 조선문화연소장>/북한학자 적어 섭섭… 학회만들 계획
『북한이 왜 당초 예정했던 1백50여명의 참가자를 11명으로 줄였는지 모르겠다. 정말 섭섭하다.』
조선학국제학술토론회를 실질적으로 준비해왔던 최응구교수는 1일 기자와 만나 『남북이 한데 모여 학문교류를 통해 화해하자는 뜻으로 이번 토론회를 주선했다』며 지난달 23일에도 북한에 편지를 보내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원계획대로 모두 참가해 달라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최교수는 주최측이 「조총련계」 또는 「친북한계」로 지목돼 한국정부측이 참가를 하지 말도록 학자들에게 종용한 사실을 전해들었다며 이같은 오해가 풀려 남측의 학자들이 많이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요지.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한국학관계학회를 결성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남북학자들은 제외하고 해외에 있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대회가 끝나는대로 만들 생각이다.
내개인 생각으로는 「세계고려학회」로 이름 붙여 오사카 경법대내에 상설기구로 둘 계획이다. 2년에 한번씩 열리는 토론회도 가능하다면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 계획도 갖고 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나는 원래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중국연변에서 살았다. 중국거주 조선족인 셈이다. 부모님 고향은 평안도이고 한일합방때 북간도로 이주해서 살았다고 들었다.
61년 연변대(문학과)를 졸업,북한 김일성종합대에서 63년까지 연구원생활을 하기도 했다. 경제학부에 다니고 있던 김정일서기와는 이때 친분을 맺었다(김정일과의 관계는 더이상 묻지 말아달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남북한이 교과서를 따로 만들고 양쪽의 역사가 서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가능하면 남북공동의 교과서나 사전을 만들고 싶고 이번 「고려학회」가 결성되면 이를 통해 평소 내가 생각해왔던 꿈을 실현시키고 싶다.
남북이 학문적으로 친목을 도모하면 언젠가는 통일이 되리라고 믿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 「정치부문」이 정치선전장으로 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은데….
『어제 도착한 북쪽학자들도 화기애애한 가운데 학문적으로만 얘기하고 헤어지겠다는 생각이었다. 남북이 싸우려면 판문점에서 다투어야지,여기까지 와서 할 필요가 있겠는가.
토론장에서 쓸데없는 정치선전은 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사회자들에게도 특별히 주문해 놓았다. 그러나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다.』
­8ㆍ15 범민족대회를 앞둔 시점이라 북측이 이 대회참가를 선전자료로 내걸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주최자로서의 입장은 솔직히 말해 어느 한쪽편도 들고 싶지 않다. 주최측으로서는 「적극적중립」의 입장을 지켜나갈 것이다.』
­주최측의 하나인 오사카 경법대는 어떤 성격의 대학인가. 다시 말해 남과 북중 어느편인가.
『오사카 경법대에는 조총련에 있었거나 현재도 그쪽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총련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원래 이사장 김상숙박사(85년 작고)가 소유한 땅을 팔아 10억엔을 마련,국제교류기금을 조성했으며 여기서 이자로나오는 돈이 연6천만엔으로 이를 유익한 일에 쓰자는 뜻에서 토론회를 시작한 것이다. 순수한 민간자금이다. 지금은 아들(김준행)이 이사장직을 물려받고 있으나 뜻은 똑같다.
오사카경법대 자체는 교포학교로서가 아니라 일본인학생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지난 71년 설립되었고 현재 학생 6천5백명에 교수 70명이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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