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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40대 늦깎이 두 신인감독 뛴다 튄다 "호스티스 + 멜로 + 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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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선'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흔하디 흔한 불륜이 소재이면서도 영화 곳곳에 기발한 유머와 통념을 뛰어넘는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강원도 소도시의 도장가게 주인 태한(박광정)이 아내와 바람을 피운 서울의 택시기사 중식(정보석)에게 장거리 손님인 척 접근하면서 시작하는 얘기다. 한눈에도 궁상맞아 보이는 태한과 달리 중식은 "불륜은 없다. 사랑만 있다"를 외치며 온갖 여자한테 친절한 호색한. 사실상 원수지간이지만 두 남자의 대비되는 성격 덕분에 이 여정은 마치 소풍 같은 분위기가 돼버린다. 여행의 끝에는 두 남자 모두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고 역지사지의 처지가 된다. 대개 번듯한 역할이 단골이었던 정보석의 변신을 비롯, 박광정.조은지 등 남녀배우들의 호연이 단연 눈부시다.

영화를 만든 김태식(47)감독은 서울예대를 다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이후 일본.호주 등에서 방송광고 쪽 일을 해왔다. "프로덕션이라는 이름을 듣고 입사했더니 광고회사였다"는 사연이다. 그런 틈틈이 준비해 온 작품이 이번의 데뷔작. 영화 속 디테일도 재미있다. 기름 넣으러 들른 주유소에 강도가 들거나, 도로 한복판에 수박이 쏟아지는 희한한 일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묘사된다. 감독은 "그런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인생"이고 "바람을 피우거나, 그 바람을 맞거나 하는 것 역시 그런 일"이라고 말했다.

'경의선'은 이미 상업영화로 데뷔한 감독이 작은 규모로 새로 도전한 작품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지난해 코미디 '역전의 명수'를 내놓았던 박흥식(44)감독은 참담한 흥행실패가 오히려 자극이 됐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감독은 동명이인) "상업영화의 틀 속에 나름의 의도를 담았는데 결국 관객에게 전달이 안 됐다"며 "규모에 관계없이 정말 하고싶은 얘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경의선'은 열차에서 졸다가 종착역에 함께 내린 두 남녀의 이야기다. 지하철 투신사고를 겪은 뒤 악몽에 시달리는 기관사 만수(김강우)와 선배 교수와의 연애가 파국에 이른 시간강사 한나(손태영)가 주인공. 이들의 단조로운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던 이야기는 점차 그들만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가속도가 붙고, 마침내 서로 위로를 얻게 되는 결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각각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을 종자돈 삼아 만들어진 두 영화는 내년께 일반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부산=이후남 기자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영화와 뜨거운 관객 반응이다. 그중에도 동성애 멜러물 '후회하지 않아'의 상영장 분위기는 유별났다. 관객의 절대다수가 젊은 여성들인 데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는 신인급 주연배우 이영훈.이한을 향한 카메라 세례와 관심이 톱스타 못지않았다. 멜러영화의 낯익은 설정을 퀴어영화에 도입한 점도 독특하다. 공장노동자 출신으로 호스트바에서 일하게 된 남자와 부잣집 남자의 사랑과 배신을 그리는 내용이다.

이송희일(35) 감독은 독립영화계의 기대주로, 이번 영화가 장편데뷔작. 다음달께 일반관객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제작동기가 궁금하다.

"5, 6년 전 동성애자인 교수와 제자 사이에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신문기사를 봤다. 영화결말 때문에 미리 밝힐 수는 없지만, 이건 참 영화 같은 얘기다 싶어 스크랩을 해뒀다. 호스트바 얘기도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예전에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하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전혀 새로운 세계라 놀랐다. 이 두 가지 얘기를 결합해 투명한 욕망을 그리고 싶었다. 퀴어영화라면 원한, 즉 사회나 남의 탓을 하는 내용을 흔히 예상한다. 그 이전에 스스로 떳떳하고 욕망에 솔직한 모습이 보여지길 바랐다."

-동성애자이면서도 신분이 다른 사람들의 멜로인 점이 독특하다.

"1970, 80년대 이른바 호스티스 멜로물의 퀴어버전이라고나 할까. 동성애자 세계도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있고, 몸에 대한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도 있고,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이다. 사회의 편견도 있고. 이런 복합성을 보여주기 위해 호스티스 장르의 외형을 빌려왔다."

-배우들에게 연기를 주문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캐스팅부터 힘들었다. 알려진 배우들은 시놉시스를 듣자마자 기겁했다. 이영훈은 함께 단편영화를 찍을 때부터 눈여겨본 배우다. 이한은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기본기가 워낙 탄탄하다. 이들에게 각자 여자친구를 대하듯 연기하라고 할까 했는데, 결국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전에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촬영 때는 '넌 동성애자야'라고 거듭 주문했다. 기존 동성애자 캐릭터는 지나치게 여성적이거나 아니면 마초적인 양극단이 많았다. 현실적인 다양한 캐릭터를 그리려 했다."

-젊은 여성관객의 반응이 열렬하더라.

"이 정도는 예상 못 했다. 배우들이 선물까지 받았고, 반복 관람했다는 관객도 있다. '꽃미남''몸짱' 열풍과 비슷한 관심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영화 자체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듣고 싶은데."

-다음 영화는.

"제작비가 제법 큰 상업영화로, 신파액션극이다. 멜로뿐 아니라 액션.판타지 장르를 무척 좋아한다. 동성애자 얘기는 재충전해 나중에 새로운 방식으로 찍고 싶다. 동성애 감독으로 불리고 싶지는 않다. 여성감독.여류시인이라는 호칭처럼, 이성애자 남성만을 보편화하는 시각이 싫어서다."

부산=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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