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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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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달랑 소금으로 간만 맞춘 천연의 맛. 처음엔 어색하지만 몇 번 먹어보면 이내 저항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게 하는 마물(魔物).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음식' '이것을 먹는 것은 마치 섹스를 하는 것과 같다'는 진미(珍味) 중 진미. 푸아그라.송로버섯과 함께 세계 3대 맛으로 꼽히는 철갑상어 알 캐비아다.

캐비아는 알을 뜻하는 페르시아말 카크아바에서 유래했다. 16세기쯤 영국에 상륙하면서 캐비아란 영어 이름을 갖게 됐다. 워낙 귀하고 비싸다 보니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도 등장했다. '속인(俗人)에 캐비아'란 구절이 그것이다. 우리 속담으로 풀면 '돼지 목에 진주' 격이다. 프랑스의 루이 13세는 카스피해에서 전용 마차로 실어오게 했고, 빼돌린 사람은 목을 쳤다. 정력제나 최음제로도 쓰여 이란에선 '힘의 과자(Cake of Power)'로 불린다.

철갑상어에 대한 호칭도 각별했다. 영국의 헨리 1세는 왕실어(Royal Fish)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물게 잡혔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꼬리가 키같이 생겨 기미어(箕尾魚)라고도 부른다. 최고 오륙십 자(尺)나 되고 비 올 무렵엔 떼지어 다니며 물을 뿜는데 배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비늘이 손바닥만 하고 강철처럼 단단해 두드리면 쇠붙이 소리가 난다. 오색이 선명하고 미끄럽기가 빙옥 같으며 맛도 뛰어나다."

캐비아는 바이칼호 것을 최고로 친다. 그 바이칼호에 떠도는 원혼 괴담 한 토막.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2년 뒤인 1919년 11월. 반혁명군 지도자 콜차크 장군은 50만 명의 병사와 식솔 75만 명을 끌고 태평양 연안으로 도주했다. 제정 러시아의 황금 500t과 명품 캐비아를 28대의 마차에 나눠 싣고서. 장장 8000㎞의 대장정. 석 달 만에 100만 명이 죽고 바이칼호에 도착했을 때 남은 인원은 25만 명. 그마저 80㎞의 바이칼호를 건너던 중 모두 동사했다. 당시 수은주는 영하 69도를 가리켰다. 이듬해 5월 얼음이 녹자 25만 구의 시체는 모두 호수로 가라앉았다. 이후 바이칼호의 캐비아는 어부들에게 비극과 애환의 상징이 됐다.

유엔이 최근 북한에 대한 사치품 수출을 금지했다. 그중 캐비아는 김정일의 화려한 식탁을 장식하는 필수품이라고 한다. 바이칼호의 상품 캐비아는 ㎏당 5000달러를 호가한다. 수십만 주민이 굶어 죽는데도 제 입맛만 챙긴 김정일, 바이칼호의 원혼들도 못마땅했을까.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