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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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충청북도 청원군 사주면 산남리가/충청북도 청주시 산남동으로 편입되던 날 밤/산남동 사람들은/막걸리 통을 갖다 놓고/한바탕 청주시 노래를 부르는데/텃 논배미 맹꽁이는/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되/청원군 노래만 부르더라.』(「편입지구I」 전문)
60년「향우 문학동인회」동인으로 충북문단에 참여하면서부터 30년간 향토문학을 지키고 이끌어온 한병호씨(52). 한씨가 충북 문협 주최 문학의 밤에서 이 시를 낭송했을 때 어린이로부터 노인들까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되면서도 향토 상실에 대한 비감이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교재학시절 전국고교백일장 현상공모에 당선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한씨는 1977년『현대문학』에 추천완료 돼 중앙문단에 데뷔했다.
『어느 날 갑자기/죽고싶을 때가 있다/어느 날 갑자기 오래 살고 싶을 때가 있다/그건/자유 중에 가장 값진 자유다.』(「자유」전문)
한씨의 시는 쉬우면서도 대체로 짧다. 그러나 언뜻, 쉽게 지나치기에는 시행 사이에 무슨 철학 혹은 페이소스 같은 것이 들어있지 않나 눈여겨보게 한다. 한씨는 또 지금까지 펴낸 5권의 시집 중 첫 시집을 제외하고 발문이나 해석을 붙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독자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해설 따위는 싣지 않습니다. 또 내 시는 해설을 해서 독자들을 이해시킬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잖아도 복잡한 세상, 그래도 시를 찾아 읽는 독자들을 위해 나는 그들에게 내 시를 생체로 주려합니다.』
독자들이 그의 시로부터 자유롭듯 그도 중앙문단으로부터 자유롭다.
중앙에 있는 문예지에 작품발표를 하려 전전긍긍하면 할수록 순수성을 잃어 작품자체도 망가지니 아예 그 욕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청주라는 지역을 놓고 문명과 자연을 대비시키며 삶의 의미를 떠올려 보려는 연작시「청주」를 80편 예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제목이「청주」이니 마땅히 무심천에 대해서도 써야겠기에 시상을 얻으려 고요한 새벽 무심천에 나가보면 썩은 냄새만 나고, 뿌연 물안개 속에서도 환히 피어오르던 옛 무심천의 벚꽃은 흘러간 사랑처럼 아른거리고, 대체 누가 이강에「무심」이라는 하도 좋은 이름을 먼저 지어 놓았는지, 시 쓰기가 무척 힘드네요.』
한씨는 현재 음성여중 교감으로 있으면서 충북 문협 회장을 맡고 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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