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 공장 근로자 코속 이상질환 "무방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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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내 중금속을 취급하는 도금공장 근로자들에게서 크롬 등 중금속에 의한 비중격 질환이 높은 비율로 발생해 이들에 대한 건강안전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림대 의대부속 한강성심병원 이비인후과의 박문서 교수 팀이 지난 88년5월∼89년8월 이 병원을 찾은 56개 중금속 취급 도금공장 근로자 6백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중 73명(11.5%)에게서 비중격 증세가 발견됐다는 것.
비중격병변은 콧속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으로 이번 조사에서 ▲진 무름 증세가 37명(5.8%)으로 가장 많았고 ▲천공(구멍이 뚫어짐) 30명(4.7%) ▲궤양 6명(0.9%)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금속에 노출된 기간은 2년 이하가 38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중 특히 1년 이하가 23명이나 돼 중금속에 의한 독성이 얼마나 강한가를 적나라하게 입증시켰다.
이런 질환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 박 교수는『도금작업 때 생기는 크롬·아연·니켈 등의 중금속이 먼지나 증기에 섞여 호흡할 때 콧속에 축적되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크롬은 도금·피혁제조·방부제처리·약품제조 과정에서 많이 발생하는 원소며 일반적으로 2가 크롬·3가 크롬·6가 크롬의3종류가 있다. 이중 6가 크롬이 가장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장·산업장에서 강력한 산화제나 색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크롬은 폭로의 농도와 기간에 따라 발병에 차이가 있으나 보통 공기 중에 입방m당 1㎎이상이 퍼져있을 때 비중격병변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작업장 대기환경의 허용농도를 6가 크롬인 경우 입방m당 0.05㎎, 그 밖의 크롬은 입방m당 0.5㎎이하로 규정하고 있는 실정.
비중격증세가 있는 환자 중 57명이 과거에 크롬·니켈·아연·황화동 등의 금속에 노출된 흔적이 있었다. 특히 콧속에 구멍이 뚫어지는 천공환자 30명중 29명이 과거 크롬에 노출된 흔적이 있어 도금업체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좋지 않은가를 그대로 드러냈다.
박 교수는『비중격병변 중 천공은 이비인후과 영역에서도 가장 치료가 어려운 질환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교수 팀은『이들 천공환자 중 17명을 수술한 결과 완전히 치유된 사람은 6명, 증상이 호전된 예가 4명, 그리고 나머지 7명은 증세의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크롬이 가진 위해성은 코뿐만이 아니라 허파에 침적돼 암을 일으키고 간장·신장·골수에도 축적된다는 것.
조사팀은 이번의 흉부방사선 검사에서 2명이 비활동성 폐결핵증세가 있음을 밝혀냈다.
미국 등 외국의 보고에 따르면 크롬도금공장에서15년 이상 근무한 직공의 폐암발생 빈도가 일반인에 비해 1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해 중앙대 약대 손동헌 교수는『중크롬산소다와 크롬색소공장에서 호흡기계 암의 발생률이 다른 작업자들보다 20배 이상 많다는 보고도 있다』고 밝혔다.
손 교수에 따르면 크롬에 의한 폐암발생기간은 폭로 후 약20년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들 중금속에 의해 인체가 조금씩 병들어 가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중금속에 의한 피해를 막는 방법은 철저한 예방밖에 없으며 중금속의 위해성에 대해 근로자들에게 적절한 교육과 계몽을 시키고 기업체의 소유주들이 충분한 환기시설을 갖추게 하는 등 안전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손 교수는 충고했다. <이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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