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기자의오토포커스] 기아, 디자인 독립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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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기아자동차가 지난달 28일 개막한 파리모터쇼에서 '디자인 경영' 을 표방했습니다. 기아차는 그동안 현대차와 디자인 컨셉트가 크게 다르지 않아 특징이 없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앞뒤에 붙은 로고만 다른 수준이라는 혹평도 들었습니다. 그나마 직선을 살린 스포티지가 기아차의 체면을 살렸을 뿐입니다. 일각에선 기아차가 현대차와 같은 플랫폼(차체 뼈대)과 엔진.변속기를 쓰는 바람에 디자인 독창성이 없다고도 합니다.

실제 기아차 옵티마는 현대차 EF쏘나타와, 쎄라토는 아반떼XD, 스포티지는 투싼, 프라이드는 베르나와 속살이 같습니다. 그런데 기아차는 현대차에서 엔진.변속기를 약 5% 정도 비싸게 사옵니다. 정상적 거래를 위해 현대차가 이익을 붙여 파는 것입니다. 판매 대수는 현대차보다 못한 데다 비싼 가격에 원자재를 조달하다 보니 대당 판매이익이 줄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지요. 인건비는 현대차와 비슷합니다. 경영성적표가 좋을 리 없지요. 올 2분기에는 영업적자를 냈습니다. 결국 이런 식의 플랫폼 공유를 하면 현대차와 대결해 '백전백패'라는 인식이 사내에 확산됐습니다.

그러자 최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나서서 디자인 개혁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7월에 그가 직접 나서 폴크스바겐.아우디 수석 디자이너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53)를 영입해 디자인총괄(CDO) 부사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정 사장은 최근 "세계 시장에서 역동적인 기아차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는 독창적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전 차종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라"고 언명했습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파리모터쇼에서 "기아차의 다목적차(MPV)나 소형차는 경쟁력이 있는 차종"이라며 "앞으로 기아차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찾아 전 차종에 일관되게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한순간 눈길을 끄는 디자인보다는 통일된 디자인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우디.BMW처럼 전 차종에 공통 디자인 요소를 가미한 '패밀리 룩'을 추구하겠다는 겁니다.

멀리서 봐도 '아, 저 차는 기아차구나' 하는 차별화된 요소를 갖추겠다는 뜻이지요. 요즘 나오는 아우디 차에는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이 범퍼까지 내려오는 '싱글 프레임'이 달려 있습니다. 싱글프레임은 2002년 이후 주요 자동차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아차의 디자인 차별화 전략은 늦은 감은 있지만 올바른 방향인 것 같습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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