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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김동리·김대환 … 문인, 정·관계 인재 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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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寅畏上帝 智之本(인외상제 지지본)'. 대구시 대신동에 자리 잡은 계성고교 본관인 헨더슨관 앞 돌에 새겨진 글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다'는 성경(잠언 1장 7절)의 한 구절이자 이 학교의 교훈이다. 헨더슨관 옆에는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인 아담스관이 있다. 1908년 건립된 아담스관은 개교 이후 격동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채 이 학교의 상징물로 우뚝 서 있다.

대구의 사학명문인 계성고가 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5만8203명.

이 학교는 1906년 10월 미국의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였던 제임스 아담스(한국명 안의와)가 설립했다. 현재의 학교 인근에 있던 선교사 사택에 교실을 만들고 처음으로 신입생 27명을 받았다.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이었던 아담스는 1908년 3월 현 대신동 언덕에 아담스관을 지어 학교를 옮겼다. 이 건물은 당시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선교사가 만든 학교인 만큼 철저하게 기독교식 교육을 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어려움도 겪었다.

신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일찍이 독립운동에 눈을 떠 1919년 3월 8일 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을 벌였다. 전교생 46명과 교사들은 지금의 경북고.신명여고 등의 학생이 가세하자 서문시장 인근 큰장길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학교 김재현(54.59회) 교감은 "우리 학교가 지역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다는 점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50년에는 학교에 군대가 주둔하면서 또다시 휴교하는 비운을 겪었다. 학생들은 학도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해군에서 학도병으로 복무했던 박성대(75.38회) 총동창회장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 동문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 학교 졸업생 가운데 문화.스포츠계에서 활약한 인물이 많다. 국내 최초로 한글사전을 펴낸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윤재(3회.작고)와 시인 박목월(23회.작고), 소설가 김동리(21회.작고) 선생도 계성고가 배출한 인물이다. '동무생각' 등을 작곡하고 연세대 음대학장을 지낸 박태준(5회.작고)과 가곡 '그집앞' 등을 만든 현제명(8회.작고)도 동문이다.

34년 학생들의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만든 유도부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며 많은 스타를 낳았다. 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병근(68회)과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경근(68회).김재엽(70회)이 대표적이다. 교기인 유도를 장려하기 위해 70여 년간 매주 한 시간씩 유도 과목(1, 2학년 전원)을 가르치고 있다.

학계에서는 신태식(18회.작고).신일희(44회) 부자가 계명대 총장을 지냈다. 정성기(51회) 전 포항공대 총장과 이용두(58회) 대구대 총장도 이 학교 출신이다. 지난해에는 55회 동기인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각각 노동행정과 노동계의 대표를 맡아 화제가 됐다.

학교 측은 교사를 서구 지역으로 옮겨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는 등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총동창회도 지난해 11월 20억원을 모아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계성고는 13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개교 100주년 '계성의 날'행사를, 14일에는 계명문화대 운동장에서 동문 가족이 참여하는 '계성 동창가족 체육대회'를 연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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