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뻥 축구' … 태극호 구멍 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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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시안컵 예선 5차전에서 한국의 설기현(가운데)이 시리아 수비 두 명 사이를 드리블로 뚫고 있다. [뉴시스]

단조로운 측면 공격과 부정확한 마무리. 한국 축구의 고질이 되살아났다.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은 따냈지만 축하를 받기엔 부끄러운 경기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일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아시안컵 B조 예선 5차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6위 시리아와 1-1로 비겼다. 3승2무(승점 11)가 된 한국은 조 1위를 지켰고, 이란과의 원정경기(11월 15일) 결과에 관계없이 조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티켓을 따냈다.

한국은 김동진-김상식이 중앙 수비로 나섰고, 양 윙백 이영표와 송종국이 하프라인까지 올라오는 극단적인 공격을 펼쳤다. "비겨도 되지만 승점 3점을 따는 경기를 하겠다"는 핌 베어벡 감독의 승리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포진이었다.

한국은 전반 8분 선제골을 얻었다. 김상식이 하프라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길게 넘겨준 공을 잡은 최성국이 수비 한 명을 제치고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조재진이 수비 사이에서 높이 점프하며 헤딩슛, 공은 오른쪽 골 그물에 꽂혔다.

이른 선제골에 방심한 탓이었을까. 한국은 전반 18분 뼈아픈 동점골을 내줬다. 지나치게 전진한 수비진이 롱패스 한 방에 뚫렸고, 페널티 라인을 벗어난 골키퍼 김영광이 가슴으로 걷어낸 공을 마헤르 알 사이드가 가로챘다. 오른쪽 페널티지역으로 공을 끌고 들어간 알 사이드가 사각에서 날린 슛이 골문을 통과했다.

한국은 이후 줄기차게 시리아 문전을 공략했지만 단조로운 측면 공격만으로 시리아의 밀집 수비를 뚫기 어려웠다. 중앙을 휘저으며 찬스를 만들어주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재가 아쉬운 장면이었다.

한국은 후반 12분 조재진, 15분 최성국이 완벽한 찬스에서 어처구니없는 로빙슛으로 찬스를 날려버렸다. 후반 28분 김남일이 수비 세 명 사이로 찔러준 스루패스를 받은 최성국의 슛도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설기현이 부지런히 오른쪽을 휘저었지만 실속이 없었고, 왼쪽의 이영표는 잦은 실수와 느린 패스로 경기 흐름을 자주 끊었다.

추가시간 4분이 주어졌지만 한국 선수들은 공을 돌렸다. 베어벡 감독은 마지막까지 한 명도 선수를 바꾸지 않았다. 비겨서 본선 진출에 만족하겠다는 뜻이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붉은 악마' 응원석에서도 야유가 쏟아졌다.

내년 7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에서 공동 개최되는 아시안컵은 6개 조에서 예선을 통과한 12팀과 개최국을 합쳐 16개 팀이 본선을 벌인다.

정영재.이충형 기자

양팀 감독의 말

▶핌 베어벡 한국 감독

좋은 출발을 보였고 경기를 장악했다. 추가 골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순간 집중력이 무너져 동점을 허용했다. 시리아는 8~9명이 페널티 지역 안에서 수비해 공간이 나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최종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졌고, 문전에서 집중력도 떨어졌다. 선수 교체도 고려했지만 공격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괜찮았고, 최종 패스의 예리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최성국은 아직 발전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파예르 이브라힘 시리아 감독

주전 선수 중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7명이 빠져 아쉬웠다. 한국은 빠르고 뛰어난 선수가 많아 수비에 치중했고, 비긴 것으로도 만족한다. 한국팀은 마무리, 특히 헤딩보다 발로 마무리하는 부분이 미흡했다. 축구에서는 골을 넣는 것이 중요하다. 시리아가 찬스를 잘 살렸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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