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계약직 벽 열정으로 넘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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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제가 좀 욕심이 많아서…"

대한민국 1호 증권사(교보증권의 전신은 대한증권) 1호 여성 지점장이 된 이유란다. 7년 넘게 '아줌마'로 지냈어도 다시 직장으로 컴백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란다. 월 100만원 계약직 사원이 1년 반만에 정규직 대리가 된 이유도 다 '욕심'이란다. 교보증권의 첫 자산관리형 점포인 강남PB센터 김종민(45.사진) 신임 지점장 얘기다.

"자신감 없으면 시작도 안했습니다."

처음 가는 자리에 '수장'으로 임명된 데 대한 부담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응수한다. 그답다. 자신 없었다면 1989년 국민신탁을 퇴사하고 96년 현대증권에 계약직 신분으로 재입사하지도 않았을 거란다.

"억울했죠. 그렇지만 세상이 그랬는 걸요."

출근하면 남자 직원들 재떨이 비우고, 책상 닦고, 모닝 커피를 타다 나르는 게 여직원들의 일이었다. 입사시험 성적 2등. 남자 선배들이 '모르겠다' 싶으면 찾는 단골이 '김종민'이었지만, 막상 승진이나 보상때면 고졸 여직원 몫은 없었다. 회사는 결혼과 동시에 그를 밀어냈다. 그게 80년대였다.

실력은 7년이란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았나 보다. 김 지점장을 기억했던 누군가가 그를 추천했다. 현대증권이 국민신탁을 인수하면서 상품 관련 전문가가 필요했던 터였다.

"7년 묵은 아줌마를 누가 불러 주겠냐. 당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에게 보답해 봐라."

오히려 남편이 김 지점장의 복귀를 부추겼다. 일단 마음 먹은 이상 잘하고 싶었다. 야근, 출장을 밥 먹듯 했다. 복직을 응원해 준 남편도 돌아섰다.

"월 100만 원 계약직이 무슨 그런 일을 하냐. 당신 같이 일하는 여직원은 본 적이 없다. 당신 없다고 회사 망하나."

그래도 출장에서 돌아오면 새벽 1시고 2시고 서울역으로 마중을 나왔던 남편의 '외조'가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1년간 연봉 계약서만 4번을 고쳐썼다.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에 회사가 내놓은 답이다. 1년 후엔 대리로 승진까지 시켜줬다. 바이코리아 열풍이 불던 2000년대 초반 수탁액이 10조를 돌파했을 땐 회장 상도 받았다. "대리가 1억 원 넘는 연봉을 챙겨간다"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2003년 6월. 외근에서 돌아왔더니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왔단다.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지난 때였다. 무작정 기다리겠다던 카페를 찾아갔다. 교보증권의 상품담당 부서장이었다.

"제가 꼭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김 지점장은 신생 PB점포인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다. 명실상부하게 종합자산관리가 가능한 곳으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본점서 회사 자산을 운용하던 인력을 끌어왔다. 상속.증여 관련 문제도 한 번에 상담할 수 있도록 전문 변호사와 계약도 맺었다. 대규모 설명회보다는 10명 안팎의 소규모 세미나를 열어 투자자 교육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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