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새우 어선 시위는 끝났지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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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해 꽃새우잡이 어민들의 갑작스럽고도 격렬했던 해상시위가 사흘만에 일단 수습된 데 대해 우리는 우선 안도의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어민들의 해산은 사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닌 일시 유예라는 점도 아울러 생각하게 된다.
연안어업에 대한 당국의 정책과 어민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이해 사이에는 여전히 크나큰 괴리와 갈등과 충돌의 소지가 남아 있으며 언제 어떤 계기에 새로운 불씨로 되살아날지 알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우리는 먼저 이번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몇가지 측면에 주목하면서 당국의 보다 진지한 사태수습의 성의를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로 지적할 것은 정책의 현실성과 정책결정 과정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종래 어민들이 꽃새우잡이에 쓰던 저인망 사용을 수산청이 금지하고 집중단속을 실시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수산자원 보호와 어로질서 확립을 위해 치어까지 마구 잡는 어민들의 어로관행은 어민들 스스로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도 규제되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민들이 수산청의 조치가 「실정을 잘 모르는 과잉규제」라고 항의한 후에야 수산청이 뒤늦게 새 어망을 만들어 시험조업에 나섰고,그 결과를 보아 저인망조업 합법화도 검토하겠다고 한 데 있다.
수산청의 금지조치는 앞뒤가 바뀐 탁상시책이라는 혐의를 면키 어렵다. 꽃새우잡이 저인망조업이 당장 중단되어야 할 시급한 단계에 와있는지는 기술적인 문제지만 어민들이 당장 겪을 생업에의 위협에 배려도 없이 시험어로의 결과도 안보고 단속부터 시작한 데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둘째로는 정책집행의 공정성·효율성의 문제다. 사건의 직접적인 계기가 단속에 나선 지도선의 「차별단속」에 있었다는 보도나 어민들의 입을 통해 터져나온 단속선의 「부조리」는 수산청이 우선 명백한 해명을 해야 할 부분이다.
셋째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정책의 신뢰성과 권위다. 동기와 배경이 어찌됐건 이번 사태는 어민들의 과격한 집단행동에 수산당국이 당초 방침을 전면 철회한 결과가 됐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행정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원칙 상실현상이 또 한차례 된 것이다.
행정당국이 시책을 강행하려다 예기치 못한 반발에 부닥치자 원칙없이 물러서버린 이번 사건은 정부시책의 공신력에 흠이 가게 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파급효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수산업은 현재 어획고에서 세계 7위,수출고에서 세계 4위의 「대국」위치에 올라서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중에도 전체 어업인구 13만8천여가구(전체가구의 1.3%)중 대다수가 종사하는 연안어업은 남획과 오염으로 인한 어족자원 감소,작업여건 불리와 가격불안정에서 말미암은 채산성 악화,인력난 등으로 날로 위축돼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그런데도 정부시책에서 연안어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경시되어 왔다.
수산정책은 이제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이익을 보호해 주는 차원에서 검토되고 시행되어야 이에 따르는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어민들 위에 군림하고 규제하는 행정이 아니라 어민들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대변도 하고 계도도 하는 행정으로 바뀌어야 하고 어민들이 그것을 피부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임시미봉이 아닌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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