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고해성사' 왜 나왔나] 巨野 못이긴 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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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정치권의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선(先)자진공개-후(後)사면 방식을 추진 중인 가운데 한나라당도 그 걸 긍정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상황이 심각한 만큼 스스로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의 용서를 구하자"는 주장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 일각에선 "검찰수사는 야당 탄압이므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더 이상 국민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대세다.

23일 최병렬 대표 주재로 열린 운영위원회의에서 남경필 의원은 "검찰 수사에 당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우리가 먼저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히는 등 허물을 벗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오을 의원도 "1백억원 이야기가 나왔을 때 계속 부인을 했기 때문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며 "우리가 모든 것을 밝히지 않으면 국민은 우릴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재희 의원 역시 "우리가 죽는 길을 자청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만 죽게 된다"면서 "어렵더라도 모든 것을 털고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의원은 "우리 당의 사과가 국민에게 진정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정치개혁을 주도적으로 실천하는 일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崔대표는 "말 뜻은 백번 이해한다"면서도 "우리가 처해 있는 한계를 인식하면서 국민에게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은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와 서청원 전 대표 등 대선 당시의 지도부를 의식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崔대표가 앞장서서 한나라당만의 고해성사를 추진할 경우 李전후보나 徐전대표와의 관계가 미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선 자금의 내막을 덜컥 공개해 새로운 문제가 드러나면 그 책임은 李전후보 등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崔대표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崔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盧대통령이 오는 25, 26일 4당대표와의 청와대 연쇄회동에서 여야의 대선자금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타결 짓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여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은 23일 "청와대가 검토 중인 해법이 盧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 연계하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일 만하다"며 "조만간 崔대표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崔대표의 핵심참모인 尹의원은 "정치권이 조속히 대선자금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盧대통령도 대선자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정쟁으로 나라는 더욱 혼란해 질 것"이라고 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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