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고해성사' 후 사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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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전 한나라당 운영위 회의에서 의원들이 눈을 감은 채 최병렬 대표의 비자금 관련 얘기를 듣고 있다. 안성식 기자

SK 비자금 1백억원의 한나라당 유입이 사실로 드러나고, 그로 인한 정치적 파장과 사법처리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됨에 따라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자진공개하고 검찰이나 특검의 검증과정을 거쳐 국민의 사면을 받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25, 26일 4당대표와의 연쇄회동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치자금 특별법'의 제정을 제안할 방침이며, 한나라당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알려져 여야의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정치적 타결 여부가 주목된다.

싱가포르를 국빈방문 중인 盧대통령은 이날 기자단 조찬간담회를 통해 "(야당에서) 대선자금을 다 밝히라고 하나 나만 밝히면 끝나는지 이 문제에 대해서 (4당대표 회동에서) 의논을 해보려 한다"며 "누가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떠나 무슨 일이든 해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김현미(金賢美)정무2비서관은 盧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과 관련, "정치권이 정치자금을 자진공개하고 철저히 조사한 뒤 사면을 받는 특별법을 만들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金비서관은 "정치자금법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번 4자 연쇄 당대표 회동 등에서 정치권이 합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병렬(崔秉烈)대표는 이날 기자와 만나 청와대의 이 같은 흐름에 대한 질문을 받고 "盧대통령의 얘기를 들어볼 것이나 내가 먼저 (자진공개 후 사면) 얘기를 꺼낼 이유는 없다"면서 "해결책은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은 "대선자금 문제에서 한나라당이나 盧대통령 모두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양쪽이 함께 진상을 공개하고, 특검 수사 등을 통해 검증하는 절차를 밟은 뒤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사면을 받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해결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도 "대선자금 공개 문제와 관련해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정치개혁에 필요하다면 어떤 것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대선자금에 대한 사면 여부는 정치권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 국민이 동의해야 할 문제라는 점에 주목, '정치자금 특별법안'의 제정 여부를 盧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 연계해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반대할 것으로 알려져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상일.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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