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치 풀 장정의 첫 걸음/군사통제위 신설에 거는 기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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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방안중의 하나로 정부가 군비통제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침을 굳히고 있다. 11일의 청와대 당정회의에서 국방부장관이 『가시화될 남북한간 군비통제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내에 군비통제조정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은 이제 우리도 반세기 가까이 금기로 돼왔던 군축문제를 공공연히 논의할 계기를 제공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은 또한 한소 정상회담이후 며칠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여러경로에서 경쟁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 혼란스러울 만큼 의견이 백출,책임있는 당국의 정책에 관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차에 논의의 창구를 일원화했다는 데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념과 체제문제가 퇴색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과 관련해 이제는 남북한간에도 군사대결 상태의 완화가 관계개선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차례 군축에 관해 정부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해 왔지만 최근 며칠동안의 현상처럼 중구난방식의 논의를 뜻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신뢰구축의 기반으로 다각적인 교류를 우선하자는 정부제안에 대해 북한측은 일관되게 정치ㆍ군사문제 우선을 주장해왔다. 북한의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대남혁명노선과 선전적 의도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러나 조성되어가는 외부의 통일분위기와 관련해 이제는 한반도안에서도 어느 일방의 주장만 가지고 대립해서는 관계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우리는 북한의 군사문제 제기도 정부가 검토할 것을 주장해 왔다. 대화란 어느 일방의 주장을 묵살하는 것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우선 북한의 의견도 들어보고 우리측의 의견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이제는 얼마전까지와 같은 대결구도를 전제로 한 전략적인 차원보다는 한반도의 긴장완화라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남북한 모두가 대화의 길을 찾을 때다.
그런 뜻에서 여러경로를 통한 최근의 의견개진은 바람직한 면도 있었지만 막상 북한측과 마주앉아 실질적인 협상카드로 내놓을 사안들을 미리 불쑥 내미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믿는다.
모든 남북대화가 그렇지만 회담당사자들은 일관되고 안정된 방침이 있어야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북한과의 대화에 진전이 있었던 것은 우리측이 안정돼 있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정치적으로 의견이 분열돼 있거나 사회적 불안이 있을때면 북한측은 일단 합의한 사안에 대해서도 태도를 바꾸든가 회담을 중단하고 관망자세를 보였던 전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통일의 과정,특히 군축문제는 일시적인 분위기에 들떠 반짝하는 지혜로 이끌어갈 일이 아니다.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의견을 조정하고 보완조치를 통해 풀어갈 문제다.
일단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 북한의 군축제안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자세를 평가하며 신중한 방안을 마련하기를 거듭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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