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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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쯤되면 광신적 종교라고 해야 옳다. 8일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개막된 월드컵 축구는 올림픽이 무색하게 온세상이 법석이다. 세계 1백18개국에서 10억2천만명이상의 사람들이 TV중계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한다. 지구인의 4분의1이다.
진작 영국축구팀의 매니저를 지낸 빌 생클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축구를 두고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확신하기로는 생사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바로 축구다.』
요즘 시사주간 타임지에서 프리츠 슈테메라는 서독의 사회학자도 세계의 축구열기를 세속종교의 그것과 비교했다. 아르헨티나의 사회학자 오마 마이다나라는 학자는 아르헨티나에선 축구코치로 성공하기가 경제장관으로 성공하기 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이번 개막전에서 아르헨티나팀이 카메룬팀에 패한 것으로도 증명되었다.
축구에 온나라 사람들이 목을 거는 생사의 문제와 비유한 말이 괜한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지금 세계에선 매년 1천5백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로,아마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다. 그 정도의 붐이다.
이번 월드컵대회를 주관하는 이탈리아는 게임당 1억5천6백만달러가 드는 경기를 운영한다. 모두 52번의 게임을 진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80억달러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주 뉴스위크지는 이 대회에 참가한 나라들의 전력을 평가하면서 우리나라를 「스포일러 그룹」으로 분류했다. 스포일러라면 다른 나라 팀의 발길에 거치적거리는 팀이라는 뜻이다. 콜롬비아,스웨덴,카메룬을 그런 나라로 점찍었다. 괘씸하지만 국제적으로 우리 실력은 아직 그 정도의 평가밖엔 얻지 못하고 있다.
최상팀으로는 서독,브라질,네델란드,우루과이를 꼽았다. 그 다음급의 팀은 이탈리아,영국,소련,유고,스페인.
한국팀은 비록 스포일러로 꼽았지만 롱슛에 기민하고 강하다는 평을 받았다. 뉴스위크지가 지적한 약점은 너무 미캐니컬하다는 것이다. 기계적인 축구,그러니까 융통성도,순발력도 없다는 얘기다.
설마 그것이 오랫동안 권위주의에 익숙해온 탓은 아닐 것이다. 우리보다 못한 나라도 축구는 잘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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