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군축은 신뢰구축부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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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달의 최고인민회의이후 더욱 경직된 자세로 남북한 대화에 임해온 북한측이 최근 며칠간 대화재개를 제의하고 나옴으로써 4개월동안 중단됐던 여러 차원의 접촉이 재개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북한측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화재개의 조건으로 내세웠던 콘크리트장벽 철거등을 거론하지 않고 태도를 바꾼 것으로 미루어 한소 정상회담에 때맞춰 다급하게 대응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북한측의 제의중 최근 정세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31일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안」이다. 이 제안은 그동안 북한측이 내놓았던 남북한간의 군비축소안과 기본골격에서 크게 다를 바 없는 선전공세의 성격을 다분히 풍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이번 군축제의에 유의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남북한간에도 이 문제를 더이상 외면할 수 없도록 내외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측의 제의에는 몇가지 점에서 종래보다는 현실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종래 북한의 군축안이 미국을 포함한 3자회담 주장이었던 데 반해 『3자회담이전이라도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남북한 당사자간의 협의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 비무장지대의 완충지대화,남북한 군사책임자간의 직통전화 가설등의 제안은 군사신뢰구축방안으로서 우리측도 이미 제의해 놓고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보면 남북한간의 군축문제를 포함한 여러 차원의 대화분위기와 여건은 더욱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북한측에 기대하고 싶은 것은 한소 정상회담의 실현등 급격한 정세변화에 따른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선제적인 정치선전공세로 이 회담에 임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냉전구조의 와해에 따라 이제 그 구조의 산물인 남북한 군사대결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추세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우리 정부도 남북한의 군축문제를 이미 전향적으로 검토해 오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이 88년 유엔총회연설에서 남북한 군축문제를 거론해온 이래 우리측은 신뢰구축,군비증강제한,군비축소의 3단계 군비통제방안을 설정해 놓고 있다.
북한측이 제의해 놓고 있는 것처럼 3∼4년안에 남북한병력을 10만명이하로 줄이자는 선전적인 내용은 우리측의 방안처럼 뒤에 다룰 문제다. 이에앞서 군사적 신뢰구축을 포함한 남북한간의 불신요인이 제거되어야 실질적인 군비통제가 가능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한 신뢰구축조치로서 남북한은 지난해 1년 가까이 「남북간의 다각적인 교류협력과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군사대표가 참가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을 진행한 바 있다. 북한측에 의해 중단됐던 이 회담이 곧 재개되어 매듭을 풀어가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졌던 군축문제는 이제 우리에게도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것이 필연적인 추세인 이상 우리 정부로서도 전향적인 자세로 면밀한 검토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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