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빨리 가동시켜라/쟁점도 명분도 한심한 여야 대립(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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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권은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정말 눈꼽만큼도 달라지지 못하는가.
누구든 입만 열면 난국의 원인이 실은 정치에 있다고 꾸짖고,국회의원들 사이에도 스스로 얼굴들고 다니기가 창피하다는 말이 나오는 판인데도 여야는 다시 임시국회 소집을 둘러싸고 무엇 한가지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급기야 여당 단독으로 임시국회의 소집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보기에 임시국회 소집을 놓고 여야가 싸우는 쟁점과 그 명분은 한심스럽다. 임시국회를 두차례 나눠 여느냐,한꺼번에 여느냐로 여야가 맞서 있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다툴 일이 못된다.
국회는 그동안 너무 오래 쉬어왔고 할 일은 산같이 밀려있다. 빨리 국회를 열어 임기가 다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새로 뽑고 현안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회기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는 것은 결국 상임위원장 감투 싸움이 아닌가. 민자당은 상임위원장을 전원 독점할 작정이고 평민당은 4석정도는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것이 분쟁의 초점이다. 막중한 국사야 늦어지건 말건 감투를 따고보자는 여야의 이런 대립을 국민이 어떻게 보겠는가.
상임위원장은 원내 다수파가 맡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꼭 다수파가 독점하라는 법도 없고,소수파가 꼭 나눠 받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것은 정파간의 현실적 관계와 정국상황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여야가 신뢰기반 위에서 정국을 협력관계로 풀어가겠다는 구도에 합의할 수 있다면 공유체제로 가도 좋다. 그렇지 않고 여야가 선명히 갈라서서 경쟁관계에 있다면 다수파가 모두 차지해 책임운영 체제를 지향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민자당은 야당과의 협력과 대화를 말하면서도 내부의 감투수요 때문에 독식할 생각이고,평민당은 여당과 책임을 분담할 협력자세는 보이지 않으면서 자리 배정만 요구하고 있다. 가령 평민당이 민자당 해체를 주장하면서 민자당이 지배하는 국회의 요직만 나눠갖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감투싸움 때문에 13대 후반 2년의 국회를 이끌 의장단 선거부터 평민당이 불참해 민자당 단독으로 뽑게 된다면 국회꼴은 뭐가 되며 앞으로 정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여야가 가뜩이나 심각한 국민의 정치 불신을 더 이상 악화시켜서는 안된다고 본다. 의장단 임기가 29일에 끝나므로 29일 임시국회 소집은 이제 불가피한 현실이 된만큼 평민당은 여당 단독소집으로 열리는 국회지만 참가해 투표에 응하는 것이 옳겠다. 의장단에는 평민당 부의장 1명도 포함돼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여야는 즉각 협상을 재개해 국회가 빠른 시기에 열리게 해야한다.
그 방법이 재소집이 되든,한꺼번에 회기를 30일로 하든 그것은 사소한 문제다. 지난 3월 국회의 폐회이래 이견만 보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절충다운 절충 한번 해보지 않은채 쌓아놓고만 있는 지방의원선거법·보안법·안기부법 등 각종 개혁입법과 시급한 민생의안등의 처리를 위해서도 국회는 빨리 열려야 한다.
지금 급박한 시국의 흐름에 비추어 정치권의 대응은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민자당은 내부 3파간의 손발 맞추기와 「차기」를 둘러싼 불안때문에 딴 정신이 없는 것 같고 평민당은 평민당대로 야권통합의 압력에 밀려 제자리를 지켜지 못하고 있다. 전체 정치권이 심각한 동요와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데 하루빨리 국면전환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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