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서 듣는 암울한 조국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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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내가 태어나고 또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조국이 하루빨리 정국과 사회의 안정을 되찾길 바라며 이역만리 머나먼 땅 리비아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지금은 아닌게 아니라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어 가겠노라던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공약이 공약이 되었고, 또 보통사람의 기준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게 돼 버린 듯한 느낌이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는 젖혀두고라도 안정은 커녕 살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인심은 황폐한 광야처럼 메말라가고 있다.
해외여행 자유화, 수입자유화 등으로 인해 과소비를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으며 땀흘리며 열심히 노력해 살아가기보다 한탕주의나 투기심리에 국민들이 들뜨도록 방치하고 실제로 일확천금에 눈먼 졸부들을 양산해 빈부격차를 좁히기는 커녕 한층 심화시킨 것이 과연 보통사람들의 시대상인지 궁금하다.
내집 마련의 꿈을 키우며 개미처럼 알뜰살뜰 저축하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묵묵히 살아가던 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폭등한 전세값 때문에 속속 목숨을 끊는 세상이다.
보통사람들에게 이젠 내집 마련의 꿈이 사라진지 오래란 얘기다.
지난1월 민정·민주·공화3당의 합당이 발표되었을 때만해도 국민들은 일말의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선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큰 것도 사실이다.
어렵게 내린 결단이 국가적 과제를 푸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가 하면 여전히 국민들의 가려운 곳이 무엇인가를 외면하고 있는 듯해 답답하기만 하다.
이달 들어 시국처방을 몇 가지 내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곳 해외에 나와 있는 근로자들은 국내신문만 보면 짜증부터 내기 일쑤다. 왜냐하면 밝은 미래를 열어줄 만한 반가운 소식보다 어두운 소식들만이 신문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혼란은 물가불안·사치풍조·부동산열병·노사분규·증시침체 등으로 요약되거니와 6공화국 이후 가깝게는 3당 통합이라는 「구국의 결단」 이후 실제 보통사람들의 실생활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지 대통령이하 위정자들은 새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의 결연한 의지가 절실하다고 본다.
이른바 현 시국을 「총체적 난국」이라 보고 정부는 이의 해결을 위해 경제·사회전반에 일련의 조치들을 발표한바 있으나 그 실현가능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들의 헌신적인 견마지로와 도덕성회복을 위한 믿음직스런 변신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진정 보람과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범국민적 의식개혁운동을 멀리타국에서나마 제창한다.
박종석<리비아 트리폴리 ㈜대우 a2-5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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