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예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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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폴란드 출신의 천재적 연출가 그로토브스키는 연극을 가리켜 「만남의 예술」이라고 했다.
한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는 수많은 「만남」이 있어야 한다. 우선 극작가와 연출가가 만나야 하고,연출가와 배우가 만나야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우와 관객이 만나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대미술과의 만남,음악과의 만남,때로는 무용과의 만남도 있어야 한다.
그토록 수많은 만남으로 이루어진 연극은 그러나 공연의 막이 내려짐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연극은 「순간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만남」을 통해 영원을 체험하는 게 바로 연극 예술의 매력이다.
이러한 연극과 관객의 만남을 30년동안 지속해온 극단이 있다. 실험극장이다.
1960년 대학극 출신의 젊은 연극인들이 주축이 되어 모인 실험극장은 출범할 때부터 적잖은 화재를 뿌렸다. 우선 대학극에서 활약했던 단원들의 면면이 그러했고,당시의 침체된 연극풍토를 향해 목청을 돋우었던 그들의 슬로건 또한 거창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연극사조의 수용과 창조를 표방하며 기성극단의 권위와 인습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어찌보면 당돌하기 그지없는 이 실험극장의 등장은 그러나 우리 연극계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음이 틀림없다.
실험극장은 창단 첫 공연으로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수업』을 무대에 올려 소극장의 실험무대를 선도했는가 하면,10주년 기념공연으로는 오영진의 『허생전』을 무대에 올려 연극계의 「만년 적자연극」을 흑자로 끌어 올리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연극 『에쿠스』(75)는 4개월간의 공연으로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장장 10개월의 최장수공연 기록과 함께 숱한 화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실험극장이 우리 연극계에 끼친 무엇보다도 큰 업적은 소극장운동을 활성화함으로써 동인제극단의 뿌리를 내리게 했고,또 많은 연극인들을 배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꾸준한 「연극가족」 확보로 재정적 자립을 이룩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실험극장이 오는 23일 막을 올리는 연극 『사의 찬미』를 시발로 모두 6편의 연극을 공연하는 창립 30주년 연극 패스티벌에 들어간다. 「맹진사댁 경사」가 아닌 우리 연극계의 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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