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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0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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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이현상파면… 지리산 “추방”/이승엽 모략 받았지만 웃는 얼굴로 입산
성시백은 47년 5월 남파돼 49년 5월 체포될 때까지 2년동안 정말 놀라울만큼 조직확대에 성공했다.
그는 사로당계는 물론,남로당계 흡수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다.
49년 가을 내가 정태식 블록 부책이 된 후의 일이었다. 그때는 지하당의 재정이 아주 곤란했다. 그동안 돈을 대주던 사람들이 자금 제공을 꺼리고 있었다. 정태식은 연말이 되자 할 수 없이 나더러 중앙청의 모국장한테 가서 돈을 받아오라고 했다.
1년전부터 정치자금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아직것 빼고 있다는 설명을 했다. 그 국장은 제국대학출신이며 뒤에 장관까지 될 정도로 명망도 있는 사람이었다.
장관이 될만한 고급관료가 남로당 프락치가 된것은 그 나름대로의 정세판단과 정치적 야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태식의 지시가 내키지 않았지만 상부의 지시고 또 돈을 구하지 못하면 당공작을 계속하지 못할 지경이었기 때문에 그를 찾아갔다. 그는 얼굴도 잘 생겼고 말도 잘하고 지식도 풍부하며 나이도 나보다 많아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돈 이야기를 일체 꺼내지 않고 우리나라 정세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미안하지만 3시간 후에 여기 다시 오실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3시간 후에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는 없고 어떤 여자가 큰 보따리를 나에게 전해 주었다. 정태식아지트에 돌아와서 끌러보니 2백50만원의 지폐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더욱 놀란것은 그 국장이 성시백과도 관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남로당에 돈을 대주면서도 남로당을 고사시키려던 성시백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한국의 고급관리로 출세했다는게 기막힌 노릇이었다.
이현상은 소련공산당 최고당학교에 유학가는 도중 이상조와의 싸움으로 모스크바는 가지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김삼룡ㆍ이현상ㆍ이주하는 비전향파이고 이승엽,조두원은 전향파인데 당시 박헌영은 권오직과 이들 다섯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비전향파와 전향파 사이에는 자연히 친소관계가 갈라져 있었다.
48년 평양정권을 수립할때 박헌영은 비전향파는 남로당의 핵심으로서 남조선 지하에 남겨두고 전향파는 다 이북으로 소환시켜 이북정권에 참여시켰다. 왜냐하면 이승엽ㆍ조두원 등 지조가 약한자들을 이남에 두었다가 체포되면 투항해 당을 망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48년 평양정권을 수립할때 간부들을 이남과 이북으로 나누는데 박헌영은 이러한 원칙에 의해 간부를 배치했다.
그때 한국의 지하에 남은 5대간부가 김삼룡ㆍ이주하ㆍ김형선ㆍ이현상ㆍ정태식 등이었다. 나도 남로당내의 이 계파에 속한다.
이승엽은 박헌영에 의해 파격적으로 중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늘 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김일성에 쏠려 있었다.
이현상이 평양에서 소련으로 가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오자 이승엽은 곧 이현상을 간부부장직에서 파면시키 지방으로 쫓아야 김일성의 노여움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박헌영에게 건의했다.
이 건의사건이 김일성 귀에 들어갈 것을 안 박헌영은 할 수 없이 이현상처치문제는 이승엽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승엽은 이현상을 한번 들어가면 두번 다시 살아 나오지 못할 지리산으로 파견하고 말았다. 이현상은 『좋다. 지리산에 가서 남로당 군사요원을 양성하겠다』며 웃는 얼굴로 떠났다. 남로당의 약점은 자기 군대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PN JAD
PD 19900518
PG 05
PQ 03
CP HS
SA P
CK 03
CS H02
BL 1485
GI 유재식
TI 「정치」제외 통독“청사진”담아/7월 발효 「독일통일국가조약」
TX 오는 7월1일부터 실시되는 동ㆍ서독의 통화ㆍ경제ㆍ사회통합에 관한 국가조약이 18일 정식 체결돼 양독은 이제 통일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통일때까지 양독의 기본법규가 될 이 국가조약의 체결은 동독의 경제주권 포기 및 본격적인 동독해체작업 착수를 의미한다.
◎동독 경제주권ㆍ사회보장 등 서독에 편입/EC­코메콘과의 관계확대ㆍ동독인 자손심도 배려
전문과 본문 6장38조,부칙 8조 및 1개의 공동의정서로 구성된 이 조약에 의거,동독은 경제ㆍ통화주권의 대부분을 서독에 이양하게됨은 물론 재정ㆍ세제ㆍ사회보장 등에 있어 실질적으로 서독에 편입되게 된다. 다시말해 양독합동총선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통일을 제외한 실질적인 독일의 통일은 이 조약의 발효와 동시에 거의 다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이 조약은 특히 독일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의식,통일은「새로운 유럽의 평화질서 창조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EC에 가입하기 위한 동독의 단계적 개혁 및 동유럽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에 대한 동독의 조약의무준수 및 관계확대 등의 배려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는 「불평등 통일」이란 점때문에 동독국민들이 받게될 자존심 손상을 고려,전문 첫머리에 「89년 가을 동독의 평화적 민주혁명이 통일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명기하고 있다.
당초 지난 4월24일 양독정상회담이후 본격화된 국가조약체결 논의과정에서 서독측이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위한 동독측의 책임만 강조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이번 조약체결과정에서도 서독측은 동독측에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조약에서 양독은 서독 기본법 23조에 의한 통일을 못박아 동독의 옛 5개주 부활도 분명히 했다.
이밖에 동독의 세제개혁을 규정한 「지침에 관한 공동의정서」는 조약본문의 「동독헌법의 사회주의적 사회ㆍ국가질서를 규정한 조항의 효력정지」를 분명히 한 내용에 따라 동독의 모든 법으로부터 사회주의 적 색채를 없애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부칙 8조는 통화통합과 통화교환에 관한 규정 등 실무차원의 법제정을 규정,신체제의 도입을 원할히 하고 있다.
이 조약이 7월1일부터 정식 발효되면 동독에서는 경제ㆍ사회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체제를 전제로 해온 관련법의 개폐는 물론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전제로한 신규법의 제정이 불가피하다.
경제적인 면에서의 피해는 더욱 우려된다. 서독과의 자유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동독기업은 전체의 32%선 밖에 안되며 나머지 54%는 적자경영,14%는 도산이 예상돼 당장 올 여름안에 5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서독이 1천1백50억마르크의 통일기금을 조성하고 「통일국채」도 발행하겠다고 약속했을뿐 아니라 실제로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책의 최우선목표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같은 경제ㆍ사회분야에서의 급진전에도 불구하고 동독일각에서 성급한 통독에 제동을 거는 발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나 이같은 제동이 대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유재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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