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언니보다 제가 미인 아닙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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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개성공단 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홍설경(22.사진)씨는 개성처녀다. 인민학교 시절 고향을 떠나 평양에서 교원대학(우리의 교육대학)까지 마친 뒤 관리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남한의 TV에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있다. 배우 손예진씨와 함께 찍은 개성공단 홍보 CF를 통해서다.

홍씨는 "TV에서 본 적이 있다"는 기자의 말에 "손예진 언니보다야 제가 미인 아닙네까? 예로부터 남남북녀라고 했는데"라며 배시시 웃었다. 생머리에 도톰한 입술, 반듯한 이마에 짙은 눈썹…. 낭낭한 목소리의 황해도 말투도 예뻤다.

그는 CF 촬영 때 입었던 흰 저고리에 검은색 치마 그대로였고 가슴에는 김일성 배지(북한은 초상휘장이라고 부름)를 달고 있었다.

홍씨는 26일 남한 측 방문객들을 상대로 개성공단 현황 브리핑을 했다. 똑부러진 설명에 남북 합영기업인 '아리랑 태림석재'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230여 명의 남한 측 기업인들은 연신 감탄했다.

브리핑 자료화면에는 '남북 당국간…'으로 적혀있지만 그는 '북남 당국간…'으로 읽었다. 북한 당국의 공단인력 채용 제도에 대해서도 "알선기관과 협의해 해당 인원을 보장해줍니다"라며 다소 애매한 북한식의 표현을 고집했다.

레이저포인터로 핵심 대목을 능숙하게 짚어가는 그는 브리핑 내용을 모두 암기한 듯 거침없었다.

설명을 마치면서 그녀는 "우리들은 개성공업지구를 6.15 북남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평화를 불러오는 공간으로 일떠 세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게 자기 방식대로인 당찬 모습이었다.

기업인들이 공단 현장방문에 나서자 홍씨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붉은색 메가폰을 들고 맨 앞줄에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남측 인사들이 함께 사진촬영을 하자고 권하자 환하게 웃으며 포즈도 취했다. 남쪽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낯설어 하는 공단의 북한 근로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홍씨는 어렸을 적부터 첼로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영재아로 뽑혀 고향을 떠나 줄곧 평양에서 공부했다. 지난해 6월 관리위에 배치돼 일해오다 최근 방문객 브리핑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그는 "제가 이곳에 배치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음악선생님을 하고 있을 겝니다"라고 했다. 그의 월급은 57달러50센트(우리 돈 약 5만5000원)다. 개성공단의 다른 북한 근로자와 같은 수준이다. 방문객이 없을 경우는 관리위에서 일반 사무 업무를 본다고 한다.

관리위 홍흥주 이사는 "설경씨는 기본 사무능력 뿐 아니라 브리핑 같이 쉽지 않은 일도 척척 해내는 재간둥이"라고 말했다.

개성=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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