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추사체 탄생은 '대하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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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4세에 아버지를 따라 처음 베이징에 갔던 추사는 중국인 스승 옹방강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왕희지.구양순으로 대표되는 정법(正法) 서체 외에 옛 한나라 비석에 새겨진 예서체, 즉 왕희지 이전의 서체를 알게 됐다. 추사는 40대에 한나라 예서와 함께 구양순 중심의 당나라 해서 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추사체의 골격이 된 엄정 단아한 정법(正法)을 체화하게 된다. 요컨대 추사는 한나라 예서에서 진수를 얻었지만, 생애 전시기를 통해 왕희지 이래 중국 명필들의 서체에도 정통했다. 추사체의 탁월한 경지는 추사가 중국 각 시대의 서체를 완전히 습득했기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추사체의 실체는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흔히 추사체의 형성과정을 추사의 생애와 연결해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24세 때의 연행(燕行)과 55세 때의 제주 유배가 그의 생애에 분수령이 된 건 분명하나 서체의 변모와 그대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연행이 추사가 글씨를 공부하는 데 방향을 돌린 계기가 됐지만 작품에 본격 반영된 건 30대 이후이기 때문이다. 제주 유배 이전인 40대 중반에도 추사체의 징후가 포착되며, 추사체가 완전히 농익는 시기 또한 60대 말 과천 시기다.

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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