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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국정책임의 종점/고흥문(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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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전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사용하던 문진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는 책임의 결점」. 더이상 책임을 전가할 곳이 없는,국가운명의 최종결정권이 머무는 곳이 바로 대통령직이라는 자경문인 것이다.
그렇다. 대통령의 손에는 국운의 향방을 좌우할 최종결정권이 쥐어져 있다. 누구에게 미룰 수도,미뤄서도 안되는 대통령만의 고유권한. 그렇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원칙에도 불구하고 정보·인사·예산(자금)에 관한 모든 권한은 대통령직에 집중된다. 그래서 대통령직은 한나라 최고위원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일상업무에선 최고권위라도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돋보이지 않아도 될때 태평연월이 찾아왔음을 우리는 느낀다.
○위기관리능력을 의미
그러나 현대는 위기가 접종하는 시대다. 근래 한세대 미만의 세월속에서도 인류는 숱한 안보·정치·경제상의 위기를 경험해야 했다.
더욱이 우리는 남북이 대치하고 주변4강의 이해타산이 예각적으로 교차하는 위기상존의 지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일상의 삶은 그 자체가 위기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대통령직은 무언중 곧 위기 관리능력을 의미하게 된다.
최근 2,3년 사이 특히 난국을 예견하는 말들이 무성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물론 대통령자신도 여러차례 경고성 발언을 되풀이해왔다. 그것은 어느때보다 위기도래의 개연성이 높다는 암시였다. 급기야 「총체적 난국」으로 정의되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런데 현시국이 총체적 난국인지는 차치하고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위기개연성을 스스로 강도높게 역설해오면서도 왜,어째서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통치차원에서 명심해야 할 일은 「책임의 종점」을 인식하고 항시 「비관적으로 대비하고 낙관적으로 실천하는」데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유비무환의 행동화다. 그리고 그것은 대통령직이 곧 위기관리능력의 전부로 비춰지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개인적인 심성이나 철학과는 무관하게 필수적인 조건이자 자질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3년전의 위기예견이 유비무환으로 봉쇄되지 않고 오늘날 현실로 전개되었다.
통치차원에서 볼때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구도인 「낙관적으로 대비하고 비관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되고만 것이다. 요즈음 각분야에서 공권력의 위세가 번뜩이는 모양새란 바로 「비관적 실천」의 한 단면인 것이다.
○대증적 요법으론 한계
물론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여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정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위기는 벗어나고 볼 일이다. 그러나 위기심화의 요인분석에 투철하지 않고 대증적 요법에만 매달릴 경우 요즘같은 「비관적 실천」엔 곧 한계가 찾아올 공산이 짙다. 왜냐하면 작금의 대처방법은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는,말하자면 책임추궁의 단계를 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투기자 명단공개,재벌보유 부동산의 매각종용,비위공직자처벌 등의 경우 백번 타당한 조치이긴 하지만 그들이 곧 위기를 만든 사람들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공동정범이 아닌 종범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행위와 행위자는 여러번의 책임추궁에도 불구하고 어제도 있었고 내일에도 있을 수 있다. 요컨대 우리가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여 바라는 것은 「책임의 종점에서 빛나는」위기관리능력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다.
그것은 통인시장을 둘러보는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필자는 적어도 취임초기,국민들로 하여금 신뢰와 기대감에 젖게했던 그 이상의 솔선수범이 요구된다고 본다.
좀 가혹한 지적일진 몰라도 노대통령은 적어도 다음 세가지 점에서 빗나간 탓에 「낙관적으로 대비하고 비관적으로 실천하는」 가장 나쁜 모델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첫째는 민주화요구라는 형식의 이면에 깃든 인간화의 강렬한 실체를 보지 못했거나 소홀히 다룬 점이다. 그 때문에 각계의 요구가 자제력을 상실해가는 겉모습은 크게 보면서도 인간성의 소외,질곡이 낳은 현실타파의 목소리는 가볍게 들었던 듯하다. 더욱이 그러한 목소리가 기득권층의 방어적 자세와 일부 계층의 물신숭배적 작태에 자극받아 점차 증폭되어 온 현실을 경시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대통령이 재벌이나 투기·과소비층을 향해 진작에 자신이 이해하는 선에서 발상전환 내지 자제를 당부했을 터였다.
둘째는 직접 국민을 향해 자신의 통치철학을 펼쳐보이는 대신 구태의연한 정객들을 상대로 6공의 질서를 구축하려 애쓴 점이다. 통치는 두말할것 없지만 정치도 궁극에는 국민을 상대로 지지와 호응을 구하는 행위이지 정객을 최종 상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의회에 진출한 모든 정당은 각기 국민의 일부분을 대변하기 때문에 협의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고 더욱이 한동안은 여소야대정국이었으니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회의 합의,아니 3김과의 합의가 국민의 눈에 석연치 않는 한 그것을 국민적 합의로 의제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노대통령은 통치차원에서 조차 그러한 의제에 매달렸다.
셋째는 대통령의 권위와 직결되는 권한행사를 확고히 하지 않음으로써 최종결정권에 대한 신뢰기반을 쌓지 못한 점이다. 대통령이 정보·인사·예산에 관한 권한을 통할하지 않으면 그의 결정은 권위를 잃게 된다. 6공의 각종 정책이 모래밭에 물스미듯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라든지,일련의 외교적 성과가 권위와 신뢰기반 구축에 기여하지 못한 것은 바로 대통령이 자신의 고유권한을 일부 책략꾼들에게 맡겨 버린 결과였다고 보아진다.
○국민상대 지지얻어야
따라서 노대통령은 필자가 보기에 이상의 세가지 점에 유념하면서 취임 초기의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 가야만 「총체적 난국」을 풀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노대통령이 「연말까지」 풀어야 할 매듭은 많고도 단단한다. 각계가 합심협력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으나 작금의 충격요법이 3공,5공식의 답습이 아니라 6공의 위기관리능력으로 차원높게 이어지려면 아무래도 대통령이 직접 짐을 짊어져야만 한다.
노대통령에게 「트루먼의 문진」을 선물해야 할 것 같다.<전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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